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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 베트남의 선택은
요사이 하루가 다르게 뛰는 물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세계 곡물 가격과 원자재 가격의 급속한 상승은 식량자급도가 낮고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첫 국무회의에서 물가 문제를 첫 의제로 삼았고,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은 물가 움직임을 견제하느라 정부의 성장정책에 상응하는 콜금리 인하 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새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경제성장 정책을 수행하는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하는 두 가지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이는 1970~1980년대 고도 경제성장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 늘 경제정책 입안자들을 긴장케 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인플레이션, 베트남 경제성장의 복병 베트남 역시 우리처럼 인플레이션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3년 연속 연 8% 성장률을 기록하며 거침 없이 달려 오던 베트남 경제는 올해 들어 인플레이션이라는 만만치 않은 복병을 만나 고전을 하고 있다. 작년 초 7~8% 정도에 머물던 물가상승률은 12월 12.6%, 1월 14.1%, 그리고 2월 15.7%까지 뛰어 올라 1995년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식료품을 비롯한 생필품 가격의 상승은 서민생활고를 가중시키고 이는 임금상승에 대한 압력, 나아가 파업 등 노사분규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여러 경제전문가들도 베트남의 현 인플레이션 수준이 심각하다고 평가하며, 베트남 정부가 이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경우 올해 물가상승률이 20~30%에 이를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해 경제 전반이 심각한 후유증을 앓거나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세계 경제 편입 과정에서 겪는 복합적 인플레이션 베트남의 인플레이션은 자연재해와 병충해로 인한 베트남 농작물 작황의 부진과 이에 따른 식료품 가격의 상승, 그리고 정유, 철강제품, 건설자재 등 수입 원자재 가격의 상승 등에 주로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베트남의 인플레이션에는 물가지수 이외에도 다른 여러 경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몇 년간 급격히 증가해 온 FDI의 유입과 달러화의 베트남 동화에 대한 환전 수요급증, 이에 따른 시중 유동성 증가는 작년에만 35%라는 과도한 통화량 팽창을 가져왔다. 또한 하노이, 호치민 등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개발 붐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도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정부도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2월, 거의 제한 없이 받아들이던 외국인 투자에 대해 향후 선별적으로 허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또한 올해 외국인 투자액을 작년의 203억 달러에서 150억 달러 (목표치)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런 조치는 과열된 투자를 조절하겠다는 베트남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통화긴축을 위해 지난 1월 지급준비율을 10%에서 11%로 인상했고 곧 추가 인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달러화에 대한 베트남 동화 결제를 제한하고 국내 상업은행들에 13억 달러 규모의 금융채권을 강제 인수하게 하는 등 강도 높은 긴축 통화정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재정정책 측면으로는 기업의 자금 부담 완화를 위한 부가가치세 납부 유예와 수산물, 건설기자재, 화장품, 전자제품 등에 대한 관세인하 폭을 확대하는 등 수입물가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긴축 정책은 시중의 자금사정 악화, 금리 상승, 동화의 평가절상, 주가지수 폭락 등 금융시장의 혼란을 초래했고 경제 불안정을 증폭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긴축정책의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베트남 정부는 3월 예정이었던 상업은행들의 금융채권 인수를 연기하고 베트남 투자청을 통한 주식의 대량 매입, 환율변동폭 확대 등을 발표하는 등 긴축정책의 속도 조절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나친 긴축정책의 부작용이 자칫 경제성장의 엔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의 두 마리 토끼 잡기, 성공할까 긴축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베트남 정부의 긴축정책이 당장 중단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소위 인민의 나라인 베트남에서 정부가 서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플레이션 문제를 간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과거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일어난 많은 농민 봉기나 사회적 분쟁, 더 나아가 정치적 변동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서민들의 생활고에 기인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베트남 정부가 경제성장이라는 명분만을 내세워 인플레이션을 방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산당 1당 독재체제의 베트남 정권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서라도 인플레이션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물론 현재의 긴축정책으로 경제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인플레이션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현재 베트남의 인플레이션이 통화적 측면만이 아니고 세계경제에 통합되면서 나타나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경제적 요소들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BRICs와 함께 새롭게 떠오르는 베트남은 이제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라는 시험대 위에 오른 듯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응웬 떤 중 수상은 최근 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8~9%에 이를 것이라며 매우 낙관적인 입장을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와 베트남과의 교역과 투자는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이미 베트남에 진출해 있고 지난해 우리나라는 베트남의 제1 FDI 투자국으로 올라섰다. 이렇듯 우리나라와 베트남과의 경제적 이해 관계가 직간접적으로 증대되는 시점에서 응웬 떤 중 수상의 확신에 찬 경제성장에 대한 믿음이 과연 순조롭게 현실이 될 수 있을지는 우리에게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베트남 나희량 /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제무역학과 / 조교수 2009-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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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지역의 금융협력은 가능한가
얼마 전 한-일 양국 정상회동이 있었다. 이 만남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아프가니스탄 문제에서부터 양국 간 투자 활성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 중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최근 국제금융위기와 함께 주요 이슈로 재부상하고 있는 아시아권의 금융협력과 한-일 양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였다. 아시아권의 금융협력이 관련국 정책당국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시기는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지역의 경제를 휩쓸고 지나간 금융위기는 역내 금융협력 논의를 본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금융위기로 하루아침에 경제가 반 토막 난 동아시아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의 위기대처 능력에 크게 실망했고, 역내국들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자체적인 금융위기 예방 및 대처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다양한 형태의 정책적 노력들이 나타났는데,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ASEAN+3 이니셔티브이다. ASEAN과 한-중-일 3국의 지도자들은 1997년 12월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첫 모임을 갖고 21세기 아시아의 발전전략과 역내국 간 경제협력 체제 구축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후 ASEAN+3는 매년 빠짐없이 정상회담을 열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재무장관들도 실무차원에서 매년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다. ASEAN+3 이니셔티브에서 강조된 것은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경제동향 점검 및 정책대화(Economic Review and Policy Dialogue, ERPD), 그리고 역내 통화 기반의 채권시장 활성화 등 세 가지로서 이들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우선 2000년 합의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당사국 간 통화스왑 협정 방식으로 유사시 유동성을 지원받을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데, 2007년 7월을 기준으로 체결된 역내 유동성 지원 규모가 약 83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ERPD도 같은 해 시작되었는데, 역내 자본흐름 감시 및 금융시스템 강화, 국제금융구조 개혁, 그리고 역내 자체적 위기관리 능력 제고를 바탕으로 한 금융위기의 사전적 감지 및 방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역내 채권시장 활성화는 단기 외화자본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 해소와 높은 역내 저축률을 이용한 역내 투자 제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각적인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10년이 지난 지금 그 성과는 매우 실망스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는 ASEAN+3 이니셔티브가 지닌 구조적인 한계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경우, 그간 급성장한 아시아지역의 경제규모에 비해 유동성 지원 액수가 지나치게 작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지원액의 90%가량은 수혜국이 IMF의 까다로운 여러 가지 조건들을 수용할 때에 한해 사용할 수 있게 하여 IMF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지원형태가 일괄적이지 않고 상호협정 형식으로 되어 있어 유동성 지원이 적시에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ERPD는 금융위기의 사전적 예방에 필수적인 거시 및 금융 관련 자국 정보의 공유에 관련국들이 소극적인 데다가 공유된 정보조차도 정확하게 분석해 낼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하여 효과적인 정책제안의 도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설사 정책제안을 도출하더라도 이를 당사국에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구가 없기 때문에 정책의 실효성이 거의 없다. 역내 채권시장 활성화의 경우에도 채권공급 측면에서의 비효율성이나 시장에서 차지하는 국공채 등의 압도적 비중으로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유동성 지원은 당사국 간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규모를 늘릴 수 있고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으며, 역내 채권시장 육성이나 ERPD도 관련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이뤄진다면 충분히 활성화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려면 금융협력을 위한 정책당국자들의 정치적 의지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아시아의 금융협력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제대로 된 금융협력을 향한 역내국들의 정치적 의지의 부재라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금융위기는 과거 외환위기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아시아지역의 금융협력을 위한 모멘텀을 제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국제 금융구조의 재편 요구와 더불어 아시아권 금융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간 질질 끌어왔던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시아 금융협력이 논의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일본이 제안했던 아시아통화기금의 창설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아시아통화기금의 창설은 국제금융질서 재편의 시대적 흐름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역내국 간 다양한 정치적 입장 차이의 효율적 조율과 금융협력을 위한 체계적인 정책적 접근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양국 정상의 회동을 계기로 국제질서 변화추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향후 새롭게 재편될 국제 금융질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의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동남아시아 일반 김필헌 / 한국경제연구원 / 연구위원 2009-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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