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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나부코 가스관의 운명

러시아ㆍ유라시아 일반 이유신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2012/03/22

최근 나부코 (Nabucco) 가스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이 칼럼에서 필자는 이들 사건을 나부코 가스관의 건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 나누어 정리한 후 나부코 가스관의 운명을 매우 조심스럽게 전망해 보고자 한다.

 

주지하듯이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지난 2002년 나부코 가스관 건설을 계획했다. 이 계획은 유럽연합의 지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성공을 가장 잘 증명해 주는 사건은 2009년에 발생했다. 그해 초 유럽 가스대란을 초래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가스분쟁이 발생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에너지 정상회의에서 유럽집행위원회는 나부코 가스관 건설을 유럽연합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고, 이 가스관의 건설을 추진하기 위한 자금으로 3억 2,400만 달러를 배정했다.

하지만 나부코 가스관의 건설 계획이 발표되고 나서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가스관의 건설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로 인해 몇몇 관찰자들은 나부코 가스관의 건설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자원을 확보하는데 있어 중국과는 매우 대조적인 행보를 취해 왔다. 일례로 중국은 지난 2006년에 투르크메니스탄과 양국을 잇는 가스관 건설을 추진하기로 합의했고 다음 해인 2007년부터 가스관 공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공사는 2009년 말에 이르러 제1단계가 마무리 되었고 다음 해인 2010년부터 투르크메니스탄과 중국의 가스거래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신속하게 추진된 중국의 중앙아시아 에너지 자원 확보 정책은 나부코 가스관 건설 여부에 대한 최종결정을 10년 가까이 미루어온 유럽의 행보와 비교할 때 매우 대조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나부코 가스관 건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유럽의 재정위기이다. 주지하듯이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고 이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축정책을 추구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경제 성장은 쉽지 않을 것이고 이에 따라 가스에 대한 수요도 현재보다 급격하게 증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나부코 가스관이 수송할 수 있는 가스 용량은 매년 310억 입방미터이다. 이 양은 현재 유럽연합 전체 가스 소비량의 6~7퍼센트에 해당한다. 따라서 유럽연합의 가스 수요가 이른 시일 안에 회복되지 않는다면 나부코 가스관의 건설 또한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나부코 가스관의 건설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건설이 계획된 파이프라인이 바로 SEEP (South-East European Pipeline) 가스관이다. SEEP 가스관의 루트는 현재 나부코 가스관의 루트와 비슷하다. 이 두 가스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전자가 후자보다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소요된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SEEP 가스관은 나부코 가스관과 달리 기존에 건설되어 있는 파이프라이인 시설을 최대한 많이 활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SEEP 가스관의 용량은 나부코 가스관의 용량보다 3배 이상 작은 매년 100억 입방미터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SEEP 가스관은 ‘축소된 나부코 가스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SEEP 가스관에서 주목할 만한 사항은 바로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SEEP 가스관을 계획한 주체가 바로 아제르바이잔의 샤-데니즈 (Shah-Deniz) 가스전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영국의 석유회사 BP라는 사실이다. 둘째, SEEP 가스관이 2017년 샤-데니즈 가스전의 제2생산단계에서 생산될 가스 중 매년 10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나부코 가스관과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 경쟁에서 SEEP 가스관이 승리한다면 나부코 가스관의 건설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가스부족 문제 또한 나부코 가스관의 운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 시점에서 나부코 가스관 당사국들은 샤-데니즈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매년 100억 입방미터의 가스만을 확보할 수 있다. 이것도 나부코 가스관이 SEEP 가스관과의 경쟁에서 승리했을 경우에만 적용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부코 가스관 관계자들은 가스관의 용량을 매년 100억 입방미터로 축소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주에 나부코 가스관이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가스 부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이 건설을 추진하기로 약속한 카스피해 횡단 (Trans-Caspian) 가스관 협정이다. 이 협정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이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 건설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는 이 가스관의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최근에는 반공식적인 (semi-official) 인사를 통해 카스피해에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이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과 관련해 독자적인 행보를 취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시 말해, 양국은 가스관 협정을 체결하기 이전에 유럽연합 혹은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이미 확보했을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 한 고위관리의 발언은 이러한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양국 간의 협정에 대해 언급하며 이 고위관리는 유럽연합이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 건설을 반대하는 러시아에 압력을 행사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만약 이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이 건설되면 나부코 가스관의 건설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가스관의 용량이 매년 400억 입방미터에 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은 투르크메니스탄의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을 연결하는 동-서 (East-West) 가스관을 통해 운반된 매년 30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수송할 수 있는 시설로 건설이 계획되었다.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의 한 고위관리는 이 용량이 매년 400억 입방미터에 달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투르크메니스탄의 카스피해 영역에서 매년 100억 입방미터의 가스가 생산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투르크메니스탄 당국은 이 가스를 어디로 수출할 것인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왔다. 하지만 최근 투르크메니스탄은 이 가스를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을 통해 서쪽으로 수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지난 2011년 말 아제르바이잔과 터키가 건설하기로 합의한 아나톨리아 횡단 (Trans-Anatolia) 가스관 또한 나부코 가스관의 건설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판단된다. 아나톨리아 횡단 가스관은 터키의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으로 터키와 그루지아 국경에서 시작해 터키와 불가리아 국경까지 이어진다. 일부 관찰자들은 아제르바이잔과 터키가 아나톨리아 횡단 가스관 관련한 협정을 체결하자 나부코 가스관의 건설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터키가 아나톨리아 횡단 가스관을 통해 운반된 가스를 모두 소화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제1단계 공사에서 이 가스관은 매년 16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터키는 이 가스 중 6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소비하고 나머지는 유럽으로 수출될 것이다. 따라서 아나톨리아 횡단 가스관은 터키 영토를 통과하게 될 나부코 가스관을 대체해 이 가스관의 건설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시설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몇몇 관찰자들은 아나톨리아 횡단 가스관이 향후에 터키와 불가리아 국경에서 나부코 가스관과 연결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과 아나톨리아 횡단 가스관은 나부코 가스관이 직면한 가스부족 문제와 비용 문제를 완화해 이 가스관의 건설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부코 가스관의 운명은 무엇보다도 향후 유럽의 가스 수요 요인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나부코 가스관의 개통 시기는 샤-데니지 가스전의 제2생산단계에서 가스가 생산되는 2017년이다. 따라서 유럽의 가스 수요가 이른 시일 안에 빠르게 회복된다면 나부코 가스관의 건설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유럽의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가스 수요가 더디게 회복된다면 나부코 가스관의 건설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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