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카자흐스탄의 카자흐어 표기체계 변경 발표의 의미와 시사점

카자흐스탄 김상철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2013/03/20

라틴문자표기 체계 재도입에 대한 찬반론과 카자흐스탄 정부의 입장
 카자흐스탄은 2000년대 중반부터 국가 공식어인 카자흐어의 표기체계를 기존의 키릴문자 체계에서 라틴문자 체계로의 도입을 시사해왔다. 2000년대 중반 관련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정이 12년에서 15년 정도의 기간 동안 완료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거론될 때 마다 많은 논란과 논의를 초래하였는데, 특히 카자흐스탄과 긴밀한 관계인 이웃국인 러시아,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러시아어 사용 인구들에서 이에 대한 이견이 특히 심하게 나타났었다. 라틴 문자체계 도입은 카자흐어의 문법을 단순화, 사용 문자 숫자의 감소, 카자흐어의 디지털화를 더욱 수월하게 하고, 이를 통해 카자흐어가 세계 어느 지역에서라도 읽힐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할 것이며, 러시아어는 그 지위를 여전히 유지시켜줌으로써 문제점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를 지지하는 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카자흐어 라틴 문자체계 도입에 대한 낙관론을 우려하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특히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두드러지고 있는데, 첫째 정부의 계획에서는 과학연구 분야의 여건과 파급효과, 주요 카자흐문학 및 세계 문학 작품들의 새로운(라틴) 카자흐어로의 재번역과 이에 대한 감수 등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1990년대에 이미 키릴 중심 표기체계를 라틴 표기체계로 변경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보여준 우즈베키스탄 모델이 그 근거이다. 

  카자흐스탄 국내외의 의견들도 이와 관련되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카자흐스탄 독립 이전부터 해외에 살고 있어서 키릴 카자흐어 표기를 접할 수 없었던 비CIS 카자흐인들은 라틴 카자흐어 표기로의 전환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터키에 거주하는 카자흐인 집단에서는 카자흐어의 라틴화가 기존 키릴문자 체계로 인해 세계 어디에서라도 원활한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점이 해결되는데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이는 카자흐스탄이 소련체제에서 경험한 키릴문자체계의 도입과 다를 바 없다는 것으로, 당시의 문자체계 변경도 정치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에 의해 이루어졌고, 언어적인 유불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라틴문자 체계의 도입은 단순히 러시아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정치적인 의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인구의 1/3은 러시아인이며,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많은 카자흐인들이 러시아화되어 있으며, 많은 도시 카자흐인들은 모국어가 사실상 러시아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라틴문자 체계의 도입은 카자흐인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하고, 강화하는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국내에서 파악되는 일반적인 의견은 그리 긍정적이라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문자체계의 전환이 예정대로 추진되기 어렵거나 아니면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불필요하게 많은 비용 지출을 하게 될 상황이 발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940년 키릴문자 도입 이전의 카자흐어는 라틴문자로 표기되고 있었는데, 키릴문자 도입이후 카자흐스탄 역사의 상당부분에서 공백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전환 과정은 시간적인 공백, 경제적인 추가지출을 수반하게 되며, 언어체계 전환에 따른 국가적인 차원의 문화 및 사회적인 공백이 제대로 극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으로, 이는 우즈베키스탄의 사례에서 일정부분 나타난 바 있다. 아울러 라틴 카자흐어를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언어적인 글로벌화는 교육, 문화, 번역 및 전문용어 분야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즉 1940년 이후로 축적되어온 카자흐스탄이라는 국가의 공동체 기반, 문화적인 토대는 라틴문자 표기 도입과 전혀 걸맞지 않는 상황으로, 그저 단순한 급진 애국주의와 특정민족주의의 강화를 위해 이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카자흐어의 라틴표기 도입을 지지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특히 IT산업 및 소프트웨어 분야 관계자들은 현실적으로 키릴 문자를 바탕으로 하는 42개 글자 카자흐어 표기 체계의 범용성이 확보되지 않음에 따라 카자흐어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통신 및 소프트웨어 개발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정부의 라틴어 문자 표기체계 도입은 꾸준히 정부 관계자들에 의해 거론되어 여론의 변화 추이가 검토된바 있다. 2011년 6월 무흐타르 쿨 무하메드 카자흐스탄 문화부 장관은 라틴어 카자흐어 알파벳 도입을 선호한다는 의견을 카자흐스탄 하원에서의 질의응답과정에서 표명한 바 있다. 그는 하원에서의 답변에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몇 차례 언급해왔던 카자흐스탄에서의 라틴문자 사용 견해를 지지한다며 이러한 표기문자 체계의 변화에 따른 장점을 강조하였다. 기존 키릴문자 체계 카자흐어는 러시아어의 33개 알파벳 외에도 카자흐어 고유 발음 표기 및 문법적인 필요성으로 인해 7개 글자가 추가된 41개 문자체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라틴문자 체계로 바꿀 경우 사용되는 문자가 25-26개 정도로 가능할 정도로 표기의 편의성이 대폭 강화될 수 있으며, 특히 이동전화, 태블릿 및 PC분야에서 카자흐어 텍스트의 사용자 접근성 확대, 가독성 확대라는 측면에서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했다.

  무흐타르의 뒤를 이어 새로이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된 쿠르만갈리예바 장관은 라틴 카자흐어 체계로의 전환이 급격히 추진되지는 않을 것임을 언급하였다. 라틴문자 체계로의 전환은 사회구성원들 간에 공감대가 확대되고, 사회적인 여건이 전환에 적합하도록 준비되는 시기에 추진될 것이라는 것을 밝혔다. 카자흐스탄 문화부는 여러 가지로 문자체계 전환문제를 고려하고 있으며, 여론을 반영하여 점진적으로 추진하게 되며, 가장 핵심적인 고려 상황은 변화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카자흐스탄 사회가 준비되어 있는지의 여부가 될 것임임을 언급하여, 2011년 6월의 입장을 바꾸었다.  이러한 라틴문자체계 도입에 대한 논란은 2012년 12월 14일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 독립 21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발표한 발언에서 종지부를 찍게 되었는데,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2025년까지 라틴 문자체계 도입을 위한 정부 및 사회의 준비작업을 완료할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전문가 집단의 견해와 인접국 사례가 주는 시사점>
  카자흐스탄 정부와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이러한 정책적인 측면에서의 언급에 대해 전문가집단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의견은 카자흐스탄에서 이행된 여러 가지 국가발전 정책에서 나타난 바 있듯이 카자흐어 문자표기의 변경 역시 대통령의 이른바 카자흐스탄 국가 변화 계획과 연관되어 공식적으로 거론된 점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카자흐스탄 국민들 대부분은 몇 십 년 전 이미 카자흐스탄에서 사용되었던 라틴문자의 재도입에 대해 그리 적극적이지도 않으며, 또한 설령 이러한 정책이 심각한 위협이나 그에 상응하는 현상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도 않다. 현재 우려되는 점은 라틴문자 체계의 재도입이 실제 바뀐 문자로 문서나 책 등 각종 매체를 접해야 하는 일반인들에게서 얼마나 호응을 얻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1924년 카자흐어 알파벳>
  카자흐스탄은 20세기 이후로 여러 차례의 표기 문자체계 변화를 경험했다. 1925년 아랍문자를 바탕으로 하는 카자흐어 문어 체계가 나타났고, 1929년 이는 라틴 문자 카자흐어 문어 체계로 변화했고, 1940년 이는 러시아어에 기반하는 키릴문자 카자흐어 체계로 변화했다. 따라서 라틴 카자흐어 체계의 도입이 카자흐스탄의 카자흐인들에게는 전혀 낯선 상황은 아니지만, 이러한 문자체계의 변화와 관련하여 카자흐스탄 정부의 입장 역시 라틴문자 체계의 재도입에 대해서 2000년대 중반이후 일관되게 유지되어 오지 않았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역시 이와 관련되어 라틴 문자체계의 급격한 도입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았었는데, 2012년 독립 기념일에 2025년까지 전환과정을 완료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함으로써 카자흐스탄 정부는 기존의 점진적인 접근 방식에 변화를 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라틴문자 체계로 국가 공식어 표기체계를 전환한 CIS국가들의 사례와는 언어 및 인구사회적인 환경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은 이러한 문자체계의 전환을 비교적 단기간에 별다른 충돌 없이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완료하였지만, 완료이후 급격한 전환에 따른 부작용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표기 문자의 변화는 해당 사회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인해 절대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에 앞서 나름 성공적으로 라틴문자체계로 전환되었다고 평가되는 국가들의 사회문화적인 구조, 특히 인구학적인 구조는 이들 국가와는 상당히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은 역사적으로 볼 때 소련을 구성하고 있었던 여러 구성단위들 가운데 비슬라브계 공화국들 가운데에서 슬라브 또는 러시아 문화의 요소가 가장 활성화되었고, 유목민 중심 사회의 구조는 소련체제를 거치면서 러시아화된 정착 중심 사회 구조로 전환되었다. 반면 기존 라틴문자체계로의 전환을 이루어낸 여타 투르크계 공화국에서는 슬라브나 러시아 문화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인구적으로 여전히 투르크계를 중심으로 하는 토착민 집단이 절대적인 다수라는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소련시기를 거치면서 사회의 러시아화는 카자흐스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반면 카자흐스탄은 이들 국가와 비교되는 대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바로 접하고 있고, 역사적으로는 국가 전체 차원에서 러시아와 대립한 역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맥락으로 인해 러시아인들의 유입이 가장 많이 이루어졌고, 따라서 소련 붕괴로 인해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던 시기에 카자흐스탄 인구에서 카자흐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40% 정도였다. 아울러 소련시기 카자흐인의 상당수가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러시아화되거나, 러시아 친화적인 경향으로 변화하였고, 이러한 성향은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지 20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도 카자흐스탄 사회에 그대로 남아 문화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카자흐스탄의 두 인접국인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취하고 있는 언어정책으로 인한 사회적인 파급효과에서 라틴문자 체계의 재도입이 카자흐스탄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전망이 가능할 것이다. 국가어 정책이라는 흐름에서 우즈베키스탄은 공식적으로 러시아어를 포기하고, 우즈베크어에서도 키릴문자를 라틴문자로 바꾸는 적극적인 언어 및 문화적인 독립의 방향을 공식 정책 차원에서 시행해왔다. 그러나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 라틴문자 도입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 및 키릴문자는 우즈베키스탄 기성세대에 여전히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르기스스탄은 이와 달리 키르기스어와 러시아어에 국가어로써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여, 사회에서의 러시아어 요소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최근 이들 국가들의 국외 노동이주와 관련되어 확연하게 대조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들 국가들의 대부분의 노동이주자들이 이주하는 러시아 노동시장에서 극명하게 그 명암이 갈리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지방 출신의 젊은 노동인력들은 러시아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경우가 드문 반면,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젊은 노동인력들은 이와는 반대이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러시아로 유입되었던 양국의 노동인력들이 소련시기에 교육을 받았던 부류였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데 별반 장애 요소가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양국의 독립이후 세대들이 국외 노동이주 중심으로 부각되면서 특히 러시아어를 거의 접할 수 없었고, 러시아어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노동자들은 러시아 노동시장에서 급격히 감소하고 있고, 대신 러시아어 구사력이 우즈베키스탄보다 우수한 키르기스 인력들이 러시아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이들 국가들과는 달리 CIS권 국가로의 노동이주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문자 표기체계의 전환으로 인한 사회적인 여파가 우즈베키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과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정부는 러시아와 이른바 유라시아경제공동체를 통한 지역통합에 적극 나서고 있고, 러시아와의 상호연계, 교류는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이미 관세동맹의 형태로 양국 간에 경제적인 통합의 가속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양국민들은 상대국에 자국의 국내신분증만으로도 입국이 가능하도록 사실상의 국경철폐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러시아는 최근 자국 내 카자흐스탄 국민에 대해서는 다른 CIS국가 국민들과는 달리 한달 이내 체류자에 대해서는 거주등록 조치도 면제할 정도로 양국 간 사회 및 인적인 교류의 장애물을 없애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카자흐스탄간의 적극적인 통합 흐름과는 배치되는 성격이라 할 수 있는 카자흐스탄의 라틴문자 체계 재도입이 과연 애초 카자흐스탄 정부가 의도한 방향과 일정에 따라 완료될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어떠한 파급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관련연구자들의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