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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적에게는 법을 주라"는 브라질의 준법문화

브라질 조희문 한국외국어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2009/09/12

브라질에 있으면 다양한 형태의 위법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인도에 차를 세워놓거나 과속위반 등 교통법규위반은 다반사고, 심지어는 신호 대기중에 재떨이를 길에 털거나 아무 곳에서나 길을 건너는 보행자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과중한 세금부담 때문에 세금을 누락하거나 낮게 신고하는 경우도 일반적이다. 정부에서는 말로는 듣지 않는 시민들에게 준법을 강제하기 위해 도로 곳곳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위반시 엄청난 벌금을 징수하고 무거운 벌점을 매기기도 한다.

 

브라질사람들은 정부와 문제가 있으면 법대로 처리하기 보다는 편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관공서와 연결끈이 있는 브로커를 찾는 것이다. 관공서와 시민을 연결해주는 업무대행인을 데스빠샨찌(despachante)라고 하는데 일종의 공인브로커이다. 이들 브로커를 통하면 일이 쉽게 해결되지만 개인이 직접 나서면 일도 더딜뿐더러 행정공무원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괄시를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연방경찰에서 비자나 영주권관련 업무를 보려면 데스빠샨찌를 사용하는 것이 시간도 절약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덜 받을 것이다.

 

물론, 한국사회에서도 특권의식은 사회를 특권층과 서민층으로 나누는 사회적 병폐로 지적되고 있고 특권층은 탈법행위를 하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브라질사람들은 이러한 정도를 넘어서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브라질 사회가 이러하다보니 사회생활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범법행위를 했을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Você sabe com quem está falando?"(내가 누군지나 알고 말하는 거야?)이다. 나는 이정도의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법의 적용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법을 준수한다는 것을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받는다고 한다. 법이 있지만 국민이 준수하지 않으면 법은 있으나 마나이기 때문에 법치국가에서 법의 준수는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생활하다보면 법과 일상생활이 서로 분리되어 움직이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법을 준수하는 자와 준수하지 않는 자가 구분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법을 지키는 사람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 즉 서민이라는 생각이 팽배되어 있다.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부자가 법을 준수하려고 한다면 이는 틀림없이 바바까(babaca - 바보)일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소한 브라질에서는 사회적 지위는 법의 보호보다 더 중요하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가 없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법을 준수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신분이 낮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브라질 사람들은 인적 관계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과 인맥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한다. 이러한 인맥이 법의 굴레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라질의 유명한 역사학자인 José Honório Rodrigues는 이미 오래전에 ‘브라질에서 법보다 중요한 것은 인맥이다’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오죽하면 브라질의 격언중에 ‘Para os amigos tudo, para os indiferentes nada, e para os inimigos a lei" (친구에게는 모든 것을 주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고, 적에게는 법을 주라)라는 말이 있을까.

 

브라질 사람들이 체득한 삶의 요령은 문제가 닥쳤을 때 법이 적용되는 경우는 인맥이 없는 사람들이고 인맥이 있는 사람은 요령껏 법망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이 적용되거나 법을 준수하는 사람은 사회적인 신분이 열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탈법의식이나 탈법현상은 사회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왜 이러한 탈법현상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대다수 학자들이 동의하는 점은 이러한 탈법문화가 과거 식민지시절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브라질사람이 과거 식민지시절과 노예제도를 거치면서 주인의식과 노예의식이 혼합된 문화에 젖어있어 아직도 이러한 혼재문화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개인이 처해있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주인의 거만함이 나타나고, 어떤 경우에는 노예의 비굴함이 나타나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권리도 생각하는 시민사회의 준법정신이 발전되지 못했다고 한다. 과거에 노예주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고 노예에 대해 모든 짓을 할 수 있었다. 이는 과거 포르투갈 왕과 신하의 관계에서 노예주인과 노예와의 관계,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사회적 강자와 약자와의 관계로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이 브라질이 법의 지배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21세기에 접어든 현재에 와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법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거 노예제도의 유산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노예는 법의 지배를 받지만 자신은 법의 지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브라질은 잦은 헌법개정과 법개정을 통해 사회변화를 시도해왔지만 문화유산을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다. 좋은 법은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브라질의 유명한 인류학자였던 Sergio Buarque de Holanda는 그의 저서 “Raizes do Brasil(브라질의 뿌리)”에서 이러한 브라질 사람들의 특성을 “o Homem Cordial(감성적인 사람)”이라고 규정하여 공사구분을 싫어하고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하였는데 아직도 이러한 감성이 브라질사람들의 몸속에 녹아있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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