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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점증하는 러시아 경제 리스크

러시아 이종문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2012/08/23

2010년 4월 그리스를 시작으로 11월 아일랜드, 2011년 4월 포르투갈이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bail-out)을 신청하면서 남유럽국가들에서의 재정위기가 유로존 전체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금년 6월에는 유로존 4번째 경제대국인 스페인마저 재정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은행권 구제금융을 받아들인데 이어 7월에는 3번째 경제대국인 이탈리아 지방정부의 재정부실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스페인과 이탈리아 모두 구제금융은 물론 채무 만기연장과 원금의 일부 탕감을 포함하는 ‘소프트 디폴트(soft default)’의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유로존에서의 재정위기 확산으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미국의 고용, 주택, 산업생산 등 거시경제지표도 시장 전망치를 하회하는 등 경기 회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글로벌 경제 침체의 버팀목 역할을 담당했었던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주요 이머징마켓에서도 경기 둔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 2/4분기 경제성장률이 7.6%에 그치며 2009년 2/4분기 이후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데 이어 2자릿수 성장을 유지했었던 산업생산 또한 최근 4개월 동안 9%대에 머무르며 경기 경착륙(hard landing)의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인도 또한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경제성장률이 9년 만에 최저치인 6.5%에 그친데 이어 2012 회계연도에는 5%이하로 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글로벌 경제를 지탱하는 3대 축인 미국, 유로존, 이머징마켓이 동시에 ‘이중침체(double dip)’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감이 세계 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는 대외교역이나 외국인투자 및 금융부문에서 다른 이머징마켓과 비교해 훨씬 강도 높은 유럽 의존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유럽존 경제와는 다른 독자적인 흐름(decoupling)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6월 들어 러시아 주요 거시경제지표들에서 위험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하며 유로존 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동조화(coupling)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경제발전부가 7월 발표한 상반기 경제보고서에 의하면 2/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4.0% 상승하면서 시장 전망치와 부합했지만 4.9% 성장률을 기록한 1/4분기에 비해 크게 둔화된 수치로, 2011년 2/4분기 3.4% 성장 이후 4분기만의 최저치다. 수출 감소와 더불어 하반기 경기둔화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1/4분기 16.3%에 달했던 고정자본투자가 4~5월에는 7.7%로 둔화되었고, 6월에는 4.7%로 하락하는 등 자본투자가 급격하게 축소되면서 기업실적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가 2/4분기 4%의 비교적 건실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투자 및 수출부문에서의 부진을 내수가 그나마 뒷받침해준 덕분이었다.
  
러시아 경제의 바로메터(barometer) 역할을 하는 우랄산 유가는 6월 배럴당 평균 93.4달러를 기록하며 2010년 12월 89.5달러를 기록한 이후 18개월 만에 최저치로 내려않았다. 그 영향을 받아 수출은 6월 한 달 동안 예상치를 밑도는 408억 달러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지난 3~5월의 평균치인 460억 달러에 비해 11%이상 감소된 것으로 1일부터 9일까지 연휴가 있었던 1월의 수출액 398억 달러보다 불과 10억 달러 많은 수치다. 수출 감소로 인해 6월 러시아의 무역수지 흑자 폭은 최근 1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인 140억 달러에 그쳤다. 루블/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외환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4월까지 완만한 상승 기조를 유지하며 달러 당 30루블 미만에서 형성되었던 환율이 5월에는 평균 30.7루블로 상승한데 이어 6월에는 평균 32.9루블을 기록하며 2개월 사이 11.5%나 급등하였다. 이는 2008년 9월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 달러 당 33.6루블을 기록하였던 2009년 4월 이후 무려 3년 2개월 만의 최고치다. 우랄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하로 떨어지고,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린 것이 주요인이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12월 이후 처음으로 환율 방어를 위해 22억 달러를 방출하는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하였다. 그 영향으로 7월 들어 환율의 급등세는 진정되었으나 여전히 1달러 당 31루블 대에서 형성되고 있어 러시아 외환시장에서의 불안감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환시장에서의 불확실성 확대는 자본의 해외이탈로 이어졌다. 지난 6개월 동안 러시아 민간자본의 역외로의 순유출 규모는 434억 달러로 전년 동기 312억 달러와 비교해 40%나 급증하였다. 
  
소비자물가 불안 또한 고조되고 있다. 6월 소비자물가는 금년 들어 가장 높은 0.9% 상승한데 이어 7월에는 처음으로 월별 상승률이 1%대를 넘어 1.2%로 확대되며 물가불안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011년 1월 2.4%를 기록한 이후 월별로는 18개월 만의 최고치로 러시아 남부지방에서의 과수 및 채소 흉작으로 인한 식료품가격 급등과 물가연동제가 적용되는 자연독점부문에서의 요금 인상이 주된 요인이었다. 1~7월까지 누적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5%로 전년 동기 5.0%에 비해 다소 낮은 수치이나 문제는 최근 2개월간의 물가상승률이 지나치게 가파르다는 것과 이상 기후로 인한 세계 곡물 작황의 부진과 재고감소로 하반기에는 밀, 옥수수, 대두 등 국제 농산물의 수급불균형으로 가격이 치솟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우려가 현실화될 것이며 이는 러시아 곡물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러시아 정부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5~6%선 달성은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경기선행지표인 주식시장에서의 주가지수(RTS Index) 또한 6월 1일에는 지난 8개월 동안 최저치인 1227.7포인트를 기록하며 금년 최고치였던 3월 15일 1754.8포인트 대비 30%이상 폭락하였다. 7월 들어 다소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고는 있으나 여전히 1,300선 후반에서 횡보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러시아 시장에서 투기적 투자성향을 보였던 외국인투자자가 국제유가 동향과 동조화를 보이는 러시아 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을 회피하고, 동시에 유로존에서의 재정위기 심화에 대응하기 위한 유동성 확보 조치의 일환으로 러시아 증권시장에서 ‘매도(Sell Russia)’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러시아 주식시장이 상승국면으로 추세 전환하기 위해서는 거래의 30~40%를 차지하는 외국인투자자가 ‘매수(Buy Russia)’로 돌아서야 하는데 국제 유가가 상승국면으로 진입하기 전에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이 러시아 주요 거시경제지표들의 악화는 러시아 경제 펀드멘탈이 약화되면서 리스크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 가능성과 중국을 위시한 신흥경제국에서의 경기 급랭에 따른 글로벌 수요 감소로 인한 국제원자재 가격 하락이 러시아 경제에 주는 가장 큰 파급효과는 경기침체다.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원자재 지향적 경제 및 수출구조를 지닌 러시아에 있어 국제 에너지 가격의 급락은 곧 수출의 급감을 야기하고, 이는 기업의 투자 및 생산 감소와 민간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기를 침체시키고 나아가 경제성장 동력을 훼손시키는 연결고리로 작동한다.

 

문제는 국제유가나 유로존 경제위기가 러시아 경제로서는 통제 불가능한 외생변수라는 점이다. 외생변수에 대해 러시아가 현재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해외에서의 수요 증가로 국제원자재 가격이 안정을 찾거나, 유로존에서의 재정위기가 호전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결국 러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통제 가능한 제한적인 내생변수의 조절을 통해 유로존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받게 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단기 방안으로는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경기진작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고, 장기적 처방으로는 러시아 경제의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인 에너지 중심의 경제 구조를 탈피하고 수출 상품 및 교역대상국의 다변화를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내수시장 활성화와 관련해 연방 및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는 것은 러시아 경제로서 다행스러운 점이다. 2012년 6월 말 기준 러시아 정부의 총부채(대내 및 대외부채)는 5조 7,868억 루블로 2011년 국내총생산(GDP)대비 10.6%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국가채무비율이 78.8%, 이머징마켓의 평균 비율이 32%인 것과 비교해 대단히 양호하다. 그리고 재정수지 또한 2011년 GDP대비 0.8% 흑자를 달성한데 이어 2012년 4월까지 0.3% 적자에 그치고 있어 하반기 추가경정예산 집행과 같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여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러시아 전체 재정수입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고 있어 예상치 못할 정도의 급격한 유가하락이 발생할 경우 2009년과 같은 심각한 경제침체(-7.8%) 및 재정적자(5.9%)를 맞이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 하락이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배럴당 연평균 90달러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경우 예산운영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유가하락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완충하기 위한 준비기금(Reserve Fund)이 605억 달러가 축적되어 있고, 국부펀드(National Wealth Fund)로 운영되는 856억 달러를 추가할 경우 적립기금은 1,461억 달러에 달한다.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정책 수단에서의 활용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2011년 12월 기준금리인 ‘재할인율(ставка рефинансирования)’을 8.0%로 낮춘 이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기준금리인 1년 만기 예금금리(3.0%) 및 대출금리(6.0%)와 비교해 상당히 높으며, 브라질과 더불어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최근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1%에서 0.75%로 0.25%포인트 인하하였고, 중국인민은행도 6월과 7월 기준금리를 2차례나 인하하였고, 인도 및 브라질도 금리인하에 나서고 있는데 반해 러시아 중앙은행은 현행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 실물경제의 둔화가 아직까지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경기둔화 조짐이 가시화될 경우 금리인하 카드를 빼들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경기침체가 심각했었던 2009년 한 해 동안 10회에 걸친 금리인하를 통해 기준금리를 13%에서 8.75%까지 떨어뜨린 경험이 있다.
  
하반기 러시아 경제에 있어 추가 둔화는 거의 확실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7월말 ‘지역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2012년 러시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월에 제시했었던 4.2%에서 1.1%포인트 줄어든 3.1%로 하향 조정하였고, 201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4.3%에서 3.3%로 하향 전망하였다. EBRD의 전망치를 적용할 경우 2012년 하반기 러시아 경제성장률은 1.8%에 그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남유럽국가(PIIGS)에서의 재정위기가 독일, 프랑스 등으로 확산되면서 유로존 전체에서의 경기둔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중국을 위시한 신흥경제에서의 성장세 둔화로 원자재 수요가 급감하고 있어 러시아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 증가세가 꺾이게 될 것이고 이는 러시아 내수 및 투자 등 경제 전반에 직접적 타격을 줄 것이다.

 

러시아 정부로서는 침체국면에 접어들기 전에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선제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대외 전략은 기존의 에너지 및 원료 지향적 대외수출 상품 포트폴리오에서 탈피해야 함과 동시에 유럽 및 중국 중심의 수출대상국 포트폴리오 구성을 다변화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및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가들과의 교역 및 투자 관계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지금까지 소홀히 했었던 구소비에트연방국가인 독립국가연합(CIS)회원국 및 중동부 유럽 국가들과의 경제관계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 대내 전략으로는 전 방위적인 재정 및 금리정책을 통해 경기부양과 내수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또한 취약한 투자환경을 개선하여 민간자본의 지속적인 투자를 유인해야 한다. 수출 기여도가 축소되는 여건에서 내수 진작과 투자 촉진만이 경제성장을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가상승 압력을 낮추어야 하며 부양책 동원과 관련된 우호적 환경의 조성이 요구된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점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중유동성 확대는 실물경기 확장으로 이어지기보다 물가불안으로 연결되어 경기침체 속에 물가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야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 유동성을 제공해 내수활성화를 도모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황에 따른 민간의 소비 및 투자심리가 악화될 경우 정책의 실효성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외환시장의 안정화에 대해서 통화당국이 확실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1998년 모라토리엄 선언과 2009년 심각한 경기침체는 실물부문에서의 침체가 금융부문, 특히 외환시장으로 전이되면서 경제 전반의 리스크를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실물경기와 금융부문을 연계해 유동성의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는 효율적인 정책적 조합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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