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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20년 만에 다가온 러시아 극동의 변화

러시아 오영일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12/09/05

1. 과거 막연한 기대로 시작된 극동개발 논의
1990년 수교 당시 한국과 러시아 두 나라는 러시아 극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 협력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교포들이 많은 러시아 극동 지역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러시아 역시 한국이 러시아 극동지역에 많은 투자를 하며 자국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경제적 동반자로 다가오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한국과 러시아 두 나라가 외교 관계를 맺은 지 20년이 되었지만 러시아 극동과 한국 간의 경제 협력은 수교 당시의 기대에 여전히 못 미치고 있다. 2000년대에 접어 들며 러시아 극동과 한국은 작은 협력의 성과물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양국 수교 당시 우선적으로 언급되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자원 개발, 산업단지 조성, 인프라 건설 분야 등은 뚜렷한 성과를 못 거두고 있다.
 

사실 과거 극동 진출 논의는 러시아 동시베리아 에너지의 극동 연결이라는 가정을 대전제로 삼고 있었다. 즉 90년대 초 극동에 대한 관심이 나왔던 근본 배경에는 러시아 동시베리아 에너지가 극동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매우 컸었는데, 러시아 극동에 에너지 수급만 확실해 진다면 한중일의 자본, 기술이 접목되며 빠른 지역 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것이었다. 특히 한국 정부는 에너지를 매개체로 한 러시아 극동에서의 경제협력사업으로 북한을 개방시켜 통일의 전진기지로 활용한다는 기대감에 대규모 극동 프로젝트를 구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극동 개발을 위해 한중일 3국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러시아의 정략적 판단으로 동시베리아 에너지 개발은 20여 년 가까이 지연되었고, 그 사이 극동 사업에 대한 각국의 관심은 급감하게 되었다.

 

2. 과거와 다른 현재의 극동개발 가능성
9월 7~8일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되는 APEC 회의를 계기로 러시아 극동의 변화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급부상하고 있다. 과거 수교 후 20여 년 간 진행된 극동개발 논의가 막연한 기대감에 따른 것이었다면, 현재의 논의는 에너지 연결이라는 확실한 실체와 러시아 정부의 강력한 개발의지가 동시에 명백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확실한 실체의 첫 번째 모습은 가스, 송유관의 극동 연결이다. 지난 20여 년간 노선 문제로 지지부진하던 동시베리아 송유관이 빠르면 올 연말 극동 연해주 코즈미노(나호트카 인근)까지 연결될 예정이다. 전체 송유관 노선 중 스코보로디노에서 중국 다칭으로 연결되는 지선은 이미 완공되어 2011년 1월부터 중국으로 연 30만 배럴 규모 원유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사할린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극동 본토까지 연결하는 총 1,800km의 해상, 육상 파이프 라인(사할린 북부-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톡)도 2011년 9월 완공되어 현재 연 60억 ㎥(향후 연 300억 ㎥로 확대)의 천연가스가 극동 지역으로 공급되고 있다.
 

두 번째 변화의 모습은 러시아 중앙 정부의 강력한 극동개발 의지이다. 푸틴 대통령은 올 5월 취임과 동시에 기존에 없던 극동개발부 장관직을 신설하며 극동개발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표명했다. 물론 과거에도 극동개발에 대한 정부의 관심 표명은 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에너지 라인이 완공되며 극동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극동개발부 장관직을 만들어 극동 개발을 중앙정부 차원의 핵심 과제로 격상시킨 것이다. 신설 장관직에 임명된 빅토르 이사예프(극동관구 대통령 전권대사 겸직)에게는 에너지 자원을 활용한 아태지역과의 협력 강화, 극동의 에너지 산업기지, 물류 허브화, 에너지 수출 효율 극대화라는 핵심 임부가 부여된 것으로 알려진다.

 

3. 변화의 전망과 평가
러시아 극동의 변화를 이끌 핵심 분야는 에너지 관련 산업이다. 변화의 단초가 에너지 연결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예상이라 할 수 있다. 사할린 원유, 가스 개발이 이루어진 직후 사할린에도 LNG 기지가 건설되었듯 러시아 극동에도 LNG 기지가 우선 건설될 전망이다. 이후 정유공장, 석유화학공장도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변화의 모습은 항만 등 물류 시설의 현대화이다. 극동 발전의 큰 걸림돌 중 하나는 만성적인 항만 적체이다. 러시아 정부는 원유, 가스를 자국 내에서 가공하여 부가가치를 높인 후 해외로 수출하고자 하는 자국산업발전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송유관 연결을 통해 극동에서 생산된 에너지,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을 담당하려면 현재의 항만 시설을 대폭 개선하지 않으면 한 되는 상황이다. 때문에 극동 주요 항만의 화물 처리 능력 현대화는 물론, 분야별 전문 터미널도 건설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러시아 극동지역에서의 자원개발 분야 협력 가능성은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제는 러시아에서 외국 기업이 자원개발권을 획득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 극동의 주요 자원 매장지인 사할린과 사하 공화국의 자원개발 여건을 볼 때, 사할린은 이미 러시아 및 주요 메이저 외국 업체들이 자리를 잡았고, 사하 공화국은 도로 등 자원개발을 하기 위한 관련 인프라가 너무 열악해 초기 투자 비용이 너무 많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TKR(한반도 종단열차: Trans-Korea Railroad)-TSR(시베리아 횡단열차: Trans-Siberia Railroad)연결, 러시아 전력망의 북한 연계 등과 같은 남북러 3각 협력사업 역시 그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 변수가 워낙 크고, 그 리스크를 어떤 방식으로 분담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남북러 3각 협력을 통해 단순한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안보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다소 경제성이 떨어져도 지속적 관심을 보일 수 있지만, 러시아와 북한의 입장은 한국과 다를 수 있다. 때문에 그 공통분모를 찾아 사업을 진행시키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동 개발, 극동 진출 논의는 과거와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을 중심으로 극동 개발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주변국 기업들의 움직임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아직 한국 기업들의 구체적 활동은 안 보이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 한국 기업들은 이동통신, 농업, 호텔 운영 등 2000년대 이후 나름대로 극동에서 작은 성과들을 보인 저력이 있는 만큼 극동의 변화가 시작되는 지금부터 관심을 갖는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9월 APEC 회의를 위해 벌써부터 블라디보스톡을 찾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정부 고위급 인사, 기업인들이다. 이번 기회에 러시아 정부는 그들에게 변화를 모습을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이고, 또 실제로 그들은 러시아 극동의 많은 변화를 보고 갈 것이다.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20여 년 만에 찾아온 러시아 극동의 변화를 잡기 위해 우리 기업들의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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