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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국민들이 뿔났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냄비시위와 삼선개헌반대

아르헨티나 손혜현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 2012/09/26

지난 9월 13일 목요일 오후 8시 아르헨티나에서는 부패, 치안부재, 물가상승, 수입, 달러구입, 해외여행 규제, 16세이상 투표권 부여 그리고 3선 개헌에 “뿔난 국민들”이 냄비를 두들기는 소리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아르헨티나 최대 도시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자치시를 비롯하여 꼬르도바 산따페 등 주요 도시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전국규모의 시위가 동시에 일어났다. 주요 도로와 광장을 점령한 시민들은 “모두 꺼져라!(Que se vayan todos)", “K의 권위주의와 독재반대” 라는 구호를 외쳤고, 이러한 상황은 2001년 데 라 루아 대통령을 퇴출시켰던 상황을 연상케 했다. 이 날 거리시위에 나오지 않았던 시민들도, 8시부터 일제히 아파트 발콘과 주택 마당에 나와 냄비를 두들겼으며, 운전 중에 있던 시민들은 경적을 울리면서 시위에 동참했다. 이러한 상황은 1시간가량 지속되었다. 특히 중산층이 밀집된 지역에서의 냄비 두들기는 소리와 경적 음이 더욱 더 요란했다.

 

이번 시위가 10년 전 시위와 구별되는 점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과 같은 SNS를 통해서 시민들 스스로 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했다는 데 있다. 이미 시위가 있기 일주일 전부터 시민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각자 슬로건을 들고 13일 오후 8시 5월 광장과 주요도시의 광장과 거리에 집결하자고 약속했고, 13일 8시 시민들은 약속대로 주요 거리에 모여 5월 광장으로 행진하였다. 이날 시민들은 “자유와 우리의 헌법 수호를 위해”, “치안불안 반대”, “삼선개헌 반대”, “부패 없는 아르헨티나”, “자유구속반대”, “거짓말은 그만!”, “제도 수호를 위해”, “소리를 내자.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자” 등의 슬로건을 들고 나와 크리스티나 키르츠네르 정부의 정책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하였다.

 

뿔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을 외치고 있을 당시 대통령은 지방 순방 중에 있었다. 지방연설에서 이번 시위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언급했으며, 물가상승, 치안불안, 부패, 정부통계조작에 대해서 강하게 부정했다. 이와 더불어 이날 연설에서 실직자 자녀수당 인상을 약속했다. 각 언론과 대중매체는 시위 규모와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 관련뉴스 대신 드라마를 방영하거나 늦장 보도를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기획부 장관인 데 비도는 크리스티나의 이름으로 지방정부 시장들에게 12억 페소(약 25억 달러)에 달하는 공공사업을 약속했다. 이번 시위가 2013년 의회선거와 2015년 대선에 미칠 영향을 염두해 둔 조치였다. 특히 2013년 의회선거는 삼선 개헌의 가능성을 가늠케 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크리스티나 키르츠네르의 세 번째 집권을 위한 여권의 개헌 계획은 현재 예기치 못했던 강한 암초에 부딪혔다. 지난해 54%라는 높은 지지율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유권자의 66%는 삼선개헌을 반대하고 있다. 비록 51%가 현 정부의 국정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전체 유권자 3명 중 2명은 삼선을 위한 헌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고, 친 크리스티나 지지자의 39%도 개헌에는 반대하고 있다. 과연 정부는 삼선을 위한 사회적 지지를 구축할 수 있을까? 이러한 수치만을 놓고 볼 때 개헌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근 키르츠네르파들이 보여준 정치적 경험 즉 불가능해 보였던 문제를 해결하는 소통능력을 놓고 볼 때 향방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여론전문기관 폴리아르키아(Poliarquía)와 유력 일간지 라 나시온(La Nación)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지역적으로 반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자치시에서 81%로 가장 높으며, 반대로 찬성 비율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에서 36%로 가장 높다. 학력별로는 대졸이상의 학력자들의 반대가 79%로 높으며, 찬성비율은 초졸 학력자들에게서 39%로 높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결과는 18-30세의 젊은층 35%가 개헌을 지지하며, 57%가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점을 이용하여 정부는 젊은 유권자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 최근 선거 가능연령을 16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현 정부가 인접국가 빈곤층 이민자들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 포퓰리즘정책을 확대하고, 18세 미만의 젊은 유권자들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 선거법 개혁을 통해서 삼선에 성공한다면, 이는 현 정부의 취약한 정치적 정통성을 의미한다.

 

현재 아르헨티나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사회문제는 치안불안, 물가상승, 부패 그리고 실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란스러운 헌법개혁문제로 인해 급속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 현안문제는 정부정책의 뒷전에 있거나 축소 은폐되고 있다. 국가통계청 INDEC은 6$(1달러30센트)로 하루 평균 식사가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 우유 1리터의 가격이 6$에 달한다. 도를 넘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물가통계조작에 대해 지난 18일 IMF는 물가통계를 정상화하지 않을 경우 징계하겠다고 경고하였다. 올해 수도권에서만 36명이 살해당했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에서는 하루 평균 100대의 자동차가 도난당하고 있고, 중산층이 밀집된 지역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강도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을 축소 은폐하고 있다.

 

크리스티나정권의 과도한 권력집중과 행사 그리고 삼선개헌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최근 경제의 탈 달러화, 강도 높은 세금조사와 추징, 해외여행 제한, 치안불안 등 기본적인 자유 제한 등에 인내심이 바닥난 시민들은 결국 냄비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민주주의는 또 다시 실험대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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