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2012년 러시아 경제 회고 : 고성장과 저성장의 변곡점
러시아 이종문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전임강사 2013/01/07
2012년은 러시아 경제가 글로벌 경기침체라는 험난한 진흙탕 길을 힘겹게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성장 동력을 서서히 상실하는 머들링 스루(muddling through) 증후군에 시달린 해로 기록될 것이다. 2012년 러시아 경제는 예상과 달리 상고하저(上高下低)의 흐름을 보이며 세계은행(World Bank)의 연초 전망치 3.9%보다 0.4%포인트 낮은 3.5%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근 14년 동안 2009년의 7.8% 마이너스 성장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2012년 러시아 경제는 상반기까지만 해도 전년대비 4.4%의 안정적 성장률을 기록하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최근 2~3년간의 심각한 경기둔화에서 벗어나며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6월부터 GDP증가율이 둔화 추세로 전환한 후 8월에는 성장률이 2%대로, 그리고 11월부터는 1%대로 떨어지는 등 하반기 들어 둔화세가 급격히 확대되며 전체 성장률이 전년보다 0.8%포인트나 축소되었다. 상반기 러시아 경제는 3월의 대통령 선거, 낮은 소비자 물가상승률, 금융기관의 공격적인 소비대출 확장에 따른 민간소비 확대 등으로 견고한 성장을 유지한 반면, 하반기에는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가격의 급등, 임금상승 둔화, 금융기관 대출 축소와 소비부진에 따른 국내수요 감소, 고정자본투자 감소 등의 내부적 악재에다 부(-)의 기저효과가 나타났고, 그리스 디폴트에 대한 우려로 유로존에서의 경기침체 가속화, 미국 경기 회복세의 지연, 중국에서의 급격한 경기둔화 가능성 확대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상품수출이 예상치를 하회한 것이 경기부진을 이끈 요인이었다.
러시아 경제의 장기성장 사이클에 있어 2012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금년의 3.5% 성장이 2000년대 초반 10년 동안 지속된 고도성장을 접고 sub 3(3%대 이하 성장)의 장기 저성장으로 진입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2008~2009년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일시적 하락 과정을 극복하고 재도약하느냐를 결정하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리 2013년 러시아 경제성장에 대한 전망은 발표 기관에 따라 다양하며,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 경제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증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2년 10월 보고서에서 2013년 러시아 경제는 3.8%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였고, 세계은행(World Bank)은 3.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8% 성장을 예상하고 있으며, 러시아 정부는 그 중간인 3.7% 성장을 제시하는 등 금년보다 적게는 0.1%포인트에서 많게는 0.3%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반면 민간경제연구소인 J.P. Morgan은 3.0%, 국제금융협회(IIF)와 Capital Economics는 각각 2.8%, 2.5%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며 금년보다 증가율이 더욱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요 경제기구 및 경제연구소 러시아 경제성장률 전망치
|
발표시기 |
2012년 |
2013년 |
2014년 |
러시아 경제발전부 |
2012.09 |
3.5% |
3.7% |
4.3% |
국제통화기금(IMF) |
2012.10 |
3.7% |
3.8% |
3.9% |
세계은행(World Bank) |
2012.10 |
3.5% |
3.6% |
-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2012.11 |
3.4% |
3.8% |
4.1% |
국제금융협회(IIF) |
2012.11 |
3.1% |
2.8% |
- |
J.P. Morgan |
2012.09 |
3.6% |
3.0% |
- |
Capital Economics |
2012.09 |
3.8% |
2.5% |
2.5% |
자료 : 각 발표 기관
2012년 러시아 경제는 성장둔화와 함께 성장의 구조적 요인에 있어서도 현저한 변화를 보였다. 지난 10년 이상 러시아 경제성장을 주도했었던 석유-천연가스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부문의 역할이 급격히 감소함과 동시에 경제성장 잠재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유가 상승이 러시아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정도는 눈에 띠게 감소한 반면, 유가하락이 경기둔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급속도로 커졌다. 이는 러시아 경제가 에너지 부문에 의존하는 기존의 성장방식을 고수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 개발에 소홀할 경우 장기 저성장의 늪으로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음이다. 2011년과 2012년 상반기 동안 러시아 경제회복과 성장을 이끈 주역이 원자재 수출이 주도한 교역부문인데 반해 2012년 상반기에는 금융과 소비를 중심으로 한 비 교역부문이 성장을 주도하였다. 하반기 들어 우랄산 원유가격이 전년도(111.0달러/배럴당)와 비슷한 배럴당 110달러를 유지하였고, 수출물량(원유, 석유제품, 천연가스)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축소와 물가상승 등으로 소비지출이 감소하면서 성장률이 2%대로 급락하였다. 이는 세계 경제, 그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유로존경제의 침체로 인해 러시아 경제성장의 견인축이 해외부문(원자재 수출)에서 국내부문(내수)으로 이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러시아 경제는 글로벌 경기변동이라는 외생적 변수의 절대적 종속에서 탈피하여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정책의 초점을 경제구조의 다변화를 위한 구조조정과 내수부문의 육성에 맞춰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 내수시장 진작을 통한 경제성장 추진은 적지 않은 구조적 문제로 인해 그 실효성이 반감될 수 있다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내수확대를 위한 민간의 소득원천이 원자재 수출 수입(收入)으로 충당되고 있으며, 러시아 내수시장의 절반을 수입 소비재가 담당하고 있어 내수시장의 진작이 도리어 해외 수입수요를 촉진하여 국제수지 악화라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내수 촉진을 위한 경기부양책의 방향이 기존의 국산 소비재 구입에 대한 보조금 및 세제지원보다는 환율의 미세조정, 최저임금 상승, 도시와 농촌지역 개발, 지역 간 소득분배 및 조세제도 개선 등을 통해 민간의 소득증대 효과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선회되어야 한다. 동시에 내수용 수입수요를 대체하기 위한 국내 소비재산업 육성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내수 촉진과 더불어 투자와 관련된 성장 동력 또한 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투자는 산업 인프라 부문에 집중되었으나 앞으로는 정부통신기술(ICT), 에너지, 신소재 등 첨단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연구개발(R&D)부문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투자 주체 및 재원도 정부의 재정지출에서 벗어나 민간기업 주도의 재원확보를 통한 투자촉진을 유도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기업친화적인 투자환경(business friendly environment)을 조성하고 법률적, 제도적, 행정적, 조세 측면에서 연구개발을 촉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지금까지 러시아 정부가 수많은 경제특구(SEZ. Special Economic Zones)를 조성하고 과학기술단지(Skolkovo Innovation Center)를 설립하는 등 투자촉진과 산업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한 많은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제정책 당국이 되새겨봐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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