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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흑해 그리고 흑해경제협력기구(BSEC)의 전략적 의미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학대학 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과 부교수 2013/01/21

   2012년 12월 7일, 러시아가 오랜 동안 구상하여 왔던 러시아에서 흑해를 관통하여 유럽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에너지 수송로인 ‘사우스 스트림(South Stream)’가스관 공사 기공식이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러시아가 에너지 수송로 건설 등 에너지를 무기화하여 과거 소비에트 국가들을 통제하고, 이들의 연합을 강제적으로 다시 한 번 구축하려 하고 있다”며 강력히 비난하였다. 더불어, 미국은 흑해에서의 러시아 중심의 새로운 에너지 수송로 건설은 동유럽 및 유럽 국가들에게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우려하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공동의 언어와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비슷한 문화적 정서, 유기적으로 연결된 서로 간의 교통망 및 에너지 수송망은 과거 소련 국가들을 자연스럽게 통합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오늘날 EU가 과거의 소련보다 연방 내 국가들의 주권을 더 많이 제한하고 있으며, 미국과 EU의 비난은 그들이 주도하는 그들만의 에너지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의도에 불과하다”고 반박하였다. 

   실제, 1990년대 동유럽의 민주화, 자본주의화가 진행된 이후 미국과 EU는 동유럽은 물론 과거 소련 구성 공화국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추진해 왔으며,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흑해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수송로 확보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진행해 왔다. 흑해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추진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과 EU는 러시아를 배제하고 중동과 카스피해에서 출발하여 터키를 관통하는 ‘나부코 프로젝트(Nabucco Project)’등 다양한 에너지 수송로 개발 계획을 추진해 왔으나, 별 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해 왔다. 실제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는 2009년 1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가격 조정 및 여러 문제들로 인해 가스관 공급을 잠시 중단한 이후 한 동안 서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에서 심각한 에너지 공급 문제 및 에너지 자원 확보의 필요성을 일으켰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강대국들 간의 첨예한 경쟁과 에너지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발칸 지역과 흑해 주변을 아우르며 수립된 지역협력기구로는 ‘흑해경제협력기구(BSEC: Organization of the Black Sea Economica and Cooperation)’를 들 수 있다. 오늘날 BSEC 내에는 기존 12개 정회원국(러시아, 터키, 우크라이나,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조지아, 몰도바, 알바니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외에도 지역적으로 흑해 연안과 관련 없는 미국과 독일 등 13개 옵서버 국가들 및 EU 등 다른 4개의 국제기구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일본을 비롯한 8개국과 ‘다뉴브 위원회(Danube Commission)’ 등 9개의 국제기구들이 ‘부문별 대화 동반자(SDP: Sectorial Dialogue Partner)’로 참석하고 있다. 

   BSEC의 시작은 1990년 터키의 외잘(Turgut Özal) 대통령의 제안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989년 동유럽의 민주화와 소련의 붕괴 과정을 지켜본 터키는 복잡하게 전개되어 가던 국제 정세 속에서 자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견고히 하고, 흑해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이러한 흑해지역의 협력기구를 제안하게 된다. 실제, 1989년 이후로 동유럽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소련이 붕괴되는 등 냉전이 끝나감에 따라 터키는 외교적, 국제적으로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 냉전 시기 동안 터키는 중동과 흑해 지역에서 소련 및 동유럽 블록과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로, 미국 블록으로부터 경제, 외교, 군사적인 혜택을 누려왔다 하지만, 동유럽의 민주화와 소련의 연방 해체는 미국 블록에게 있어 터키의 중요성 약화를 가져왔고, 따라서 터키로서는 이를 대체할 만안 새로운 국제적 패러다임 및 기구가 필요하였다고 할 수 있다. 

   터키의 제안을 토대로 1992년 6월 25일 이스탄불에서, 터키와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 공간(Space)적으로 흑해에 접해 있는 6개국과 다양한 영역(Sector)별로 흑해 지역의 국가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주변 5개국(그리스, 알바니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몰도바)등 총 11개국 국가수반들이 참여하여 BSEC의 탄생을 알리는 ‘이스탄불 공동 선언문(The Istanbul Declaration)’을 발표하게 된다. 이어 BSEC는 ‘헬싱키 최종의정서(Helsinki Final Act)’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The 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의 원칙 준수를 약속하는 ‘보스프러스 선언문(The Bosphorus Statement)’을 채택하였고, 이것은 BSEC이 국제기구로써 그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것을 국제 사회에 공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 1995년 5월 BSEC 사무국이 이스탄불에 수립되어, BSEC는 그 조직적 틀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8년 6월엔 BSEC 헌장이, 1999년에는 각국 의회로부터 비준절차가 완료되고, 제 54회 UN 총회에서 UN 기구 안의 옵서버 자격 획득이 이루어짐에 따라 BSEC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지역협력기구가 되게 된다. 이후 2004년 세르비아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흑해 연안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BSEC에 가입하게 되면서 총 12개 회원국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실제 세르비아는 러시아가 구상 중인 ‘사우스 스트림’의 흑해와 유럽을 잇는 중요한 교두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BSEC 그리고 그 주요 공간인 흑해를 둘러싼 전략적 의미는 다음 과 같이 두 가지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지전략적 측면에서 흑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 중세 유럽의 눈에는 그들의 발길이 다다르지 못했던 곳, 신들의 세계가 자리한 곳이라는 신비로움, 그리고 동시에 이민족들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천혜의 방어막으로 인식되던 곳이었다. 중세에 들어와 흑해와 주변의 발칸유럽 지역은 아시아로 이어지는 유럽의 관문으로써 유럽과 아시아인들 상호 간의 경제적 부를 창출해주는 중요한 통로로, 혹은 이슬람교의 유럽 진출 가속 시기에는 아시아인들의 유럽 원정을 위한 주요 통로라는 측면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근대에 들어와 흑해 지역은 이 지역의 군사적, 전략적 중요성을 확보하기 위한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되어야 했다. 20세기 들어와서도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두 번째, 단순한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전략적 중요성만 부각되던 이 지역이, 세계의 경제적 중요 이해 지역으로 부각되게 된 것은 1990년대 이후 발칸 유럽 등 동유럽 국가들 그리고 흑해를 둘러싼 과거 CIS 국가들의 러시아 연방 이탈 및 체제 전환에 따른 민주화와 시장 경제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부터라 할 수 있다. 국제 역학 구도 변화 및 다양한 경제 분야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더 부각되는 가운데, 실제 오늘날 흑해 연안 지역은 세계적인 자원 고갈과 에너지 무기화 추세에 따라 에너지 자원 생산 및 공급을 위한 주요 통로로, 그리고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미국의 대테러 전쟁을 위한 중요 교두보이자‘신냉전(New Cold War)’이라는 국제 역학 구도의 틀 속에서 전략적 이해 지역으로 그 중요성이 보다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배경은 BSEC이 탄생하게 된 주요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한반도의 2배 크기에 해당하는 흑해는 석유 및 천연 가스를 비롯한 광대한 에너지 자원이 세계 두 번째 규모로 매장되어 있는 곳이여, 이를 기초로 탄생한 BSEC은 약 3억 5천만 명 이상의 인구, 연간 대외교역이 3천억 불 그리고 대략 2천만㎢ 지역들이 포함된 거대한 지역협력기구라 할 수 있다. 실제, ‘제 2의 중동’이라 불리는 흑해, 카스피해 지역에는 상당량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고, EU와 미국, 러시아 등이 앞을 다투며 구축 중인 다양한 에너지 수송로 건설이 계획되거나 진행 중이다. 이런 점에서 BSEC은 에너지 안보 및 수송차원, 풍부한 자원과 성장 잠재력 측면에서 새로운 신흥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커다란 잠재력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은 우리나라가 2011년 1월 1일 이후 BSEC과의 부문별 대화 협력자 관계를 구축하고, 흑해 관련 국가들의 주요 인사들을 초대하는 등 다양한 협력 관계 구축 및 BSEC에 대한 학술적 지역 연구 활성화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흑해를 둘러싼 국제 역학 구도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에너지 자원 무기화의 현실적 문제 대두와 에너지 자원 공급을 위한 새로운 보고(寶庫)라는 측면에서, 흑해와 이를 기초로 한 BSEC과의 협력 관계는 우리에게 있어 결코 소홀히 하기 어려운 미래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오늘날 BSEC은 흑해 연안 지역의 정치, 경제 그리고 안보 분야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더불어, 글로벌 경제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물론 국제 정치 역학구도 측면에서 보더라도 흑해 연안과 BSEC의 발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들 지역과 기구에 대한 국내 연구 활성화와 새로운 전략적 접근 모색 또한 매우 절실하게 필요하다 하겠다. 이를 통해 점차 확대되어가는 흑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국내에 이해시키고, 이러한 연구가 이 지역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국가 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 조사에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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