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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알렉산더의 유산에 갇힌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갈등과 전망

중동부유럽 기타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대학 교수 2014/08/15

지난 8월 12일, 그리스 정부는 그리스 동북부에 자리한 마케도니아(Macedonia) 지방의 암피폴리스(Amphipolis)에서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III of Macedon/ Alexander the Great, BC 356-323, 재위 마케도니아 왕 BC 336-323, 이집트 파라오 BC 332-323, 페르시아 왕 BC 330-323, 아시아 왕 BC 331-323)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입구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도굴 흔적이 없는 암피폴리스의 한 대형 고분을 발굴하고 있는 고고학자들은, 현재까지 머리와 날개가 없는 2개의 스핑크스가 새겨진 아치 형태의 문으로 이어진 13개의 계단과 넓은 통로를 찾아냈다고 밝히면서, 이 무덤의 조성 시기가 알렉산더 대왕 말기인 BC 325년에서 300년 사이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무덤 입구로 향하는 통로의 양면 벽이 상당히 길고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이 알렉산더 대왕 말기에 활동했던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알렉산더 대왕의 무덤은 이집트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시기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족들은 전통적으로 암피폴리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베르기나(Vergina, 영어로는 버지니아)의 집단 묘지에 매장되어 왔다. 실제, 이곳이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수도인 아이기아(Aigia)로 확인된 것은, 1977년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립 2세(Philip II of Macedon, BC 382-336, 재위 359-336)의 석관묘를 비롯해 수많은 부장품, 그리고 고대 왕국의 여러 화려한 벽화와 궁전, 대형 극장 그리고 성벽의 흔적들이 발굴되면서 부터라 할 수 있다. 2014년 5월에 들어와서는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 1세(Alexander I of Macedon, 재위 BC 498-454)의 무덤을 비롯해 5개의 왕족 무덤을 추가로 발굴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이 지역이 발굴된 이후로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상징 문장인 16각형의 베르기나의 별(Star of Vergina, 혹은 ‘베르기나의 태양’으로도 불림)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장이 되었으며, 그리스가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진정한 계승자임을 인정케 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어 왔다.
 
그리스는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역사적 흔적들과 오늘날까지 초기 왕국 영토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배경을 들어, 자신이 마케도니아 역사와 그 유산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점을 강조해 왔었다. 실제, 고대 마케도니아인은 초기 역사의 대부분을 주변세력, 특히 그리스의 지식과 사회․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마케도니아인은 민족적으론 고대 로마 제국의 동서 로마 분리 이후인 6-7세기 당시, 남슬라브족의 일파로써 내려와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된 고대 마케도니아 민족과는 다른 남슬라브 민족의 후손들이라 할 수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티토는 언어적 유사성과 중세 역사적 배경을 들어 마케도니아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고 있던 불가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 안에 6개 공화국중 하나로써 마케도니아 공화국을 수립하고 언어적 독자성을 인정해 주었다. 연방 붕괴 과정 속에 1991년 마케도니아 공화국 또한 독립 국가를 선언하였고, 이후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간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유산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과 충돌이 이어지게 된다.

마케도니아 독립 이후 불거진 양국 간 갈등의 주요 요소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것들은 우선 마케도니아 헌법 초안의 내용을 둘러싼 논쟁, 둘째, 마케도니아가 내세우는 상징물과 선전 문구를 둘러싼 논쟁, 그리고 셋째, 마케도니아 국호를 둘러싼 논쟁들이다. 독립 초기, 마케도니아는 헌법 초안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사이에 그리스를 비롯한 주변국들에게 잃어버린 영토 회복운동을 천명하였고, 이것은 주변국들의 강한 반발을 낳았다. 또한 그리스 올림포스 산까지 이어지는 마케도니아의 광대한 영토를 상징하는 수많은 지도와 차량 스티커, 각종 포스터 그리고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상징인 베르기나의 16각형별을 그린 깃발들을 확산시킴으로써 그리스의 강력한 반발을 낳게 된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독립 국가의 국호인‘마케도니아’란 명칭을 둘러싸고, 그리스는 이 명칭이 이미 자국내 북부 지방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고대 마케도니아의 역사적 정통성이 자국에게 있음을 주장하였다. 결과적으로 UN의 중재 속에, 안전보장이사회의 제 817항 결의를 통해 1993년 8월 17일 중재 안으로‘구(舊)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공화국(FYROM: the 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BJRM: Bivša Jugoslovenska Republika Makedonija)’이라는 기술적인 임시 이름을 제시하여 UN에 마케도니아 국가등록을 승인해 줌으로써 양측 간의 싸움은 일단락 되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양측 간의 갈등은 가라안지 않았고, 1994년 2월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와의 외교관계 단절 및 인도주의 물품을 제외한 마케도니아와 연결된 모든 물품에 대해서 주요 수출입 항구인 데살로니키(Tessaloniki) 봉쇄를 단행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EU와 UN의 중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양국은 1995년 9월 13일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였으며, 당시 맺어진 협약에 따라 그리스는 봉쇄 철회를, 그리고 마케도니아는 국기를 비롯해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여러 상징물들의 철회를 약속하였다. 하지만 양국 간 뚜렷한 견해차를 보이던 국명 문제에 있어선 UN 감독 하에 계속 협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상징적인 문구만이 제시됨으로써, 오늘날까지도 이를 둘러싼 양국 간의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상태이다.

실제, EU 회원국인 그리스는 2005년 마케도니아의 EU 후보국 지정에 강력히 반발하였고, 또한 2008년 마케도니아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를 향해 과거 1995년 UN의 중재 하에 맺은 합의안을 그리스가 위반했다며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양국 간의 관계 악화는 마케도니아가 필립 2세 스타디움 명명을 비롯해 여러 대형 건축물들에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역사적 이름들을 붙임에 따라 더욱 확대되게 된다. 특히 지난 2011년 9월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독립 기념일에 맞추어 거대한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 제막식을 수도인 스코프예(Skopje) 중앙 광장 한 가운데에 치루면서 확대되게 된다. 건립된 알렉산더 대왕 동상은 높이 48피트(14.6m), 무게 30t, 받침대 높이만 49피트(14.9m)로 제작비용은 1천 300만달러(138억원 상당)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케도니아 내부에선 그리스와의 관계 악화와 경제적 어려움을 들어 일부 비판이 있었지만, 상당 수 여론들은 "마침내 우리의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에서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반응을 보이며 크게 환영하였다. 하지만, 그리스는 마케도니아가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도용하려 한다는 비판과 함께, 마케도니아가 발칸반도의 가장 큰 위험 축인 영토적, 문화적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마케도니아의 이런 무리한 시도들은 오늘날 마케도니아가 겪고 있는 여러 현실적 어려움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할 수 있다. 마케도니아는 독립 이후로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자유 시장의 미정착과 경제적 빈곤, 비(非)민주주의적인 정치 투쟁의 지속, 알바니아 소수 민족과의 계속된 갈등 악화, 그리고 불가리아, 그리스 등 주변 민족들과의 역사적 민족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 등으로 국가 존립에 대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오늘날 마케도니아의 가장 강력한 우방인 미국은 오랜 동안 유럽과 러시아의 영향력 하에 나뉘어져 있었던 발칸유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마케도니아를 중심으로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추진하여 왔다. EU 회원국인 그리스를 비롯해 역사적 배경에 따라 독일 등 EU권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반면 친(親) 러시아적 성향이 강한 세르비아의 틈바구니 속에서, 발칸유럽에 영향력 확대를 기도하고 있는 미국은 이러한 역학 구도로 인해, 발칸유럽이 향후 열강들의 주요 세력 각축장이 될 우려가 있다는 분석을 내 놓고 있다. 실제, 미국은 발칸지역이 제 3차 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유럽의 화약고로 간주하고 있으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크림 반도 장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향후 오랜 동안 전통적 영향력 우위를 지켜왔던 러시아의 이해 영역 확대 의도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로 이곳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현재 발칸유럽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 마케도니아를 친(親)미 전략 국가로 설정해 놓고 있다. 현재 대내외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는 마케도니아 또한 미국과의 정치, 경제적 지원과 군사적 동맹 관계는 매우 절실하고도 반드시 지속해야 할 중요한 국가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마케도니아란 명칭은 고대 이 지역에 살았던 부족들을 가리키는 말로 ‘키 큰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 말에서 유래되었지만,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몰락 이후 그 명칭은 점차 이 지역을 칭하는 지리적인 개념으로 변모되었다. 오늘날 모습이 보여주듯, 근대 이후로 현재까지 마케도니아 지역은 러시아와 서구 열강들의 첨예한 이해 접합 점에 위치하여 왔고, 따라서 강대국들의 지속적인 개입과 간섭으로 이 지역 문제를 둘러싼 진정한 해결책들이 제시되기가 어려웠다. 또한 과거 역사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마케도니아가 주변의 어느 국가나 민족에게 완전히 편입되는 것을 방해할 것이고, 또한 완전한 자립 국가로 남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마케도니아의 정국 불안 지속이 발칸유럽의 영구적 평화 정착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점에서, 국제 사회의 관심과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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