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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U와 러시아, 선택의 기로에 선 세르비아의 외교전략

세르비아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학대학 교수 2015/04/20

  현지 시각으로 지난 2015년 4월 7일, 세르비아 국방부는 다음 달인 5월 9일 열리는 러시아의 ‘제 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 기념식 군사 퍼레이드’ 행사에 토미슬라브 니콜리치(Tomislav Nikolić, 1952- , 재임 2012. 5- )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을 다시 한 번 분명히 약속하였다. 이와 함께, 세르비아군 또한 러시아의 전승 군사 퍼레이드에 같이 참여할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이 결정은 미국과 EU 등 많은 서방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과 관련해, 러시아의 기념식 불참을 결정한 가운데 나온 것으로, EU 가입과 러시아 사이에서 국익을 저울질하는 세르비아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져있다 하겠다.

   실제, 이번 세르비아의 러시아 전승 퍼레이드 참가 의사는 작년 10월 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베오그라드 해방 70주년 기념식’을 겸해 열린 군사 행진 참관에 대한 답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 베오그라드 공항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은 토미슬라브 니콜리치 세르비아 대통령의 융성한 대접을 받고 곧바로 국립묘지로 이동,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소련군 묘지에 헌화하였다. 이 소식은 세르비아의 EU 가입 과정이 본격화되던 가운데 나온 것으로, 세르비아와 러시아 간의 전통적 우호 관계를 국제적으로 분명히 각인시켜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베오그라드 해방 70주년 기념식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4년 10월 19일 옛 소련군에 속한 우크라이나 군과 유고슬라비아 군, 불가리아 군이 합동으로 베오그라드로 진주해 독일 나치군을 몰아낸 후, 베오그라드를 해방시킨지 70주년을 기념해 이루어진 행사였다. 당시 푸틴 대통령의 세르비아 방문은 지난 2001년 러시아 연방 대통령으로서, 2010년에는 총리로서 방문한 데 이어 세 번째 공식 방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세르비아는 국가의 미래와 운명을 걸고 EU 가입을 추진 중에 있다. 실제, 2014년 4월, 세르비아 진보당(Spp: Serbian Progressive Party/ SNS: Srpska napredna stranka) 당수였던 알렉산다르 부취치(Aleksandar Vučić, 1970-, 총리 재임 2014. 4- )가 새 연립내각을 이끄는 총리가 되었을 때, 그는 정부의 최우선 국정 과제로 EU 가입을 꼽았고, 2020년 이전 세르비아가 EU에 가입할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세르비아는 작년 초부터 EU 가입을 위한 실질적인 협상을 진행 중에 있다. 작년, 세르비아는 기업 경영에 친화적인 경제 환경을 새로이 조성하겠다는 개혁 과제를 발표하면서, 개정 노동법과 파산법 및 거주 허가제 도입, 민영화 추진 그리고 세르비아에 투자하려는 모든 외국인에게 세금 감면을 포함한 최대한의 포괄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려는 방안을 강구중에 있다. 즉, 이러한 모든 개혁들은 EU 가입을 위한 EU 제반 규정을 맞추는 데 있으며, 세르비아 정부는 공공 부채 또한 EU 가입 수준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하지만 지난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함에 따라,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는 세르비아가 EU에 가입하는 주요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공식적으로 EU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러시아에 대한 EU 등 서방 제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더불어 EU 가입 협상 중인 세르비아에게도 또한 이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푸틴 대통령이 세르비아를 방문하기 직전인 10월 14일, EU는 대변인을 통한 공식 논평에서 “세르비아가 그간 EU 가입을 추진하며 EU의 러시아 제재를 포함한 외교정책에 동조해 온 만큼, 이번 푸틴 방문에서도 세르비아의 친 EU 정책이 다시 한 번 확인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과 달리, 현재 세르비아는 EU가 요구하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 동참에 대해 외교상 중립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EU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길을 고수하는 중이다.
 
   실제, 얼마 전 부취치 총리가 러시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세르비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제재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그는 오히려 여기서 더 나아가 “향후 양국 간 경제 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사안들을 보다 심도 깊게 논의할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니콜리치 대통령 또한 “(지난) 푸틴 대통령의 방문이 양국 우호 협력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향후 세르비아 경제 개발을 위한 가스관 부설을 포함한 에너지 협력 사업과 러시아 철도의 세르비아 투자, 농업부문 투자 등을 보다 심도 깊게 논의하기를 희망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세르비아가 이처럼 파격적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해, EU로선 현재 다소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EU로선 세르비아가 가지고 있는 전략적 중요성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겉으로 보기에 EU의 입장은 다소 강경하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EU는 세르비아가 EU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세르비아는 무엇보다도 EU 외교 정책을 존중해야 한다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 세르비아가 러시아 전승 퍼레이드 참가 결정을 내린데 대해서도, EU는 여러 우려를 분명히 하면서, 무엇보다도 EU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부당함과 문제점을 여러 차례 제기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EU는 이번 러시아의 전승 행사 참여를 거부하며, 따라서 세르비아가 내린 결정이 EU의 이익에 크게 위배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EU의 요구와 불만에 대해, 세르비아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EU가 오히려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줄 것을 EU측에 항변하고 있다. 세르비아는 우선, 지난 푸틴 대통령의 세르비아 방문은, 비록 EU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면서 푸틴 대통령을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 라틴어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로 정하였고,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의 EU 국가 방문이 불허되었다지만, 세르비아는 아직까진 EU 비회원국이며, 따라서 푸틴 대통령의 세르비아 방문과 세르비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두 번째, 세르비아는 세르비아가 EU 가입 협상을 시작했던 2013년 말에, 당시 러시아는 EU의 제재를 받지 않았던 상태였으며, 따라서 양국 간 상호 방문과 전통적 우방국에 대한 퍼레이드 참가에 대해 세르비아의 처지를 EU가 이해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세르비아인 중 상당수는 여전히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가 잘 유지되길 희망하고 있으며, 세르비아의 국익과 자주권을 침해하는 EU의 요구조건이 다소 지나친 것에 대해 오히려 반발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시키고자 하고 있다.
 
   자신들의 국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세르비아의 외교 전략은 EU와 러시아 사이에서 다소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작년 10월 영국을 방문했던 세르비아의 부취치 총리는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유럽연합(EU)에 가입하는 게 세르비아의 목표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또한 런던정경대학(LSE)에서 가진 강연에서 나온 푸틴 대통령의 베오그라드 해방 기념식을 겸한 군사 퍼레이드 초청 이유에 대해, 그는“세르비아는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길 원하지만, 그 때문에 EU 가입이라는 전략적인 목표가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 세르비아를 포함한 서부 발칸 지역의 장래에 있어 보다 중요한 고려 요소는 ‘정치적 관계보다는 경제적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이러한 발언은 세르비아가 향후 EU와 러시아 간에 어느 쪽이 세르비아의 실질적인 경제적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보다 고려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러시아는 세르비아의 우방으로 세르비아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예로는 2013년 재정 위기를 겪던 세르비아에게 러시아는 8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였고, 2014년 초에는 다시 5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한 바 있다. 반면, 세르비아 입장에서 EU는 실질적인 경제 이익을 주기보다는 EU 가입 전제 조건으로 세르비아에 대해, 러시아에 취한 제재참여 등 여러 압력을 행사하려는 기구로서만 해석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세르비아 정부가 수차례 밝히고 있듯이 “EU 정책을 존중하지만,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는 유지할 것”이라는 세르비아의 고충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실질적 배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운을 걸고 EU 가입을 추진하는 세르비아는 장차 EU 회원국이 되면 EU의 외교 정책을 따라야만 한다. 하지만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우방으로 오랫동안 경제, 군사적인 지원을 받아 왔다. 게다가 현재는 러시아의 대(對) EU 무역 보복 대상국에서 빠진 덕분에, 최근 러시아로의 농수축산물 수출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EU는 회원국이 아닌 세르비아도 EU가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각종 제재를 따라야 한다며, 계속해서 세르비아를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EU는 세르비아가 EU의 제재와 러시아 무역 보복을 악용해 자국의 이익을 너무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더불어, “세르비아가 EU 외교 정책을 준수하는지를 추후 EU 가입 평가 보고서에 반영할 것”이라며, 세르비아와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가 EU 가입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EU 압력에 대한 세르비아 입장은 단호하다. 즉, EU의 권고에 따라 행동하되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세르비아의 줄타기 외교 전략은 현재 세르비아로선 그리 나쁜 선택만은 아니라 할 수 있다. 현재 세르비아는‘러시아와의 관계 강화’ 그리고 ‘EU 가입을 향한 의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국가의 운명을 건다는 측면에서 다소 우려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잘못되면 오히려 양날의 칼이 되어 세르비아를 괴롭힐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오늘날 세르비아의 외교적 선택이 지닌 딜레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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