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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 오피니언] 2014년 브르베티체(Vrbětice) 폭발과 체코-러시아 관계 악화

체코 김신규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발칸연구소 전임연구원 2021/05/27

2021년 4월 17일 토요일 저녁 체코의 안드레이 바비쉬(Andej. Babiš) 총리는 예정에 없던 긴급 발표를 통해 러시아 연방군 총참모부 정보총국(GRU, Glavnoje Razvedyvatel'noje Upravlenije) 29155 부대 소속 요원 두 명이 지난 2014년 브르베티체(Vrbětice) 무기고 폭발 사건의 범인이라고 발표했다. 체코 외무부는 이와 관련해 18명의 체코 주재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고, 러시아도 20명의 체코 외교관을 추방하는 보복을 단행하는 등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며칠 뒤인 2021년 4월 20일 영국의 인터넷 탐사보도 매체 벨링캣(Bellingcat)과 체코의 주간지 레스펙트(Respekt)가 공동조사를 통해 GRU가 브르베티체 폭발 사건은 물론 그 직후인 2015년 불가리아 무기상 독극물 테러 그리고 2018년 영국 솔즈베리에서 벌어졌던 옛 러시아 정보원 스크리팔(S. Skripal)의 독살을 주도했다고 보도하면서 이 사건의 파장이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브르베티체 무기고 폭발 사건은 두 번에 걸쳐 발생했다. 10월 16일 폭발에서는 체코 무기 업체인 IMEX 그룹이 보관하고 있던 50톤의 탄약이 폭발했고 두 명의 경비원이 사망했으며, 12월 3일에는 첫 번째 폭발 장소에서 1.2km 떨어진 12번 창고에 보관된 100톤의 무기가 폭파되었다. 이 사고의 처리 비용으로 3억 5,000만 코룬이 들었고 6년 만인 2020년 10월에야 폭발물 잔해 처리가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경찰과 군 당국이 조사를 벌였지만,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지 못했고 누구의 소행인지도 밝혀내지 못했었다. 다만 체코 정보부는 폭발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을 것이라고만 추정해 왔다. 

2014년 10월, 브르베티체
2014년 10월 11일 GRU 요원 2명이 몰도바 국적의 포파 (N. Popa)와 타지키스탄 국적의 타바로프(R. Tabarov)라는 가명을 사용해 프라하에 입국했다. 같은 기간 또 다른 GRU 요원 2명이 역시 가명을 사용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입국했다. 이들은 10월 15일 헝가리에서 출국했는데 이때까지 이들이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2014년 10월 13일 GRU 사령관 아베랴노프(A. Averyanov)가 오베랴노프(A. Overyanov)라는 가명을 사용해 오스트리아 빈에 입국했고 또 다른 GRU 요인도 가명으로 같은 날 빈에 도착했다. 

이렇게 두 명씩 짝을 이룬 세 팀은 비슷한 시기에 각각 프라하, 부다페스트, 빈에 입국했다. 입국에서 출국까지 이들의 정확한 행적이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브르베티체를 둘러싸고 동-서-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프라하 팀은 브르베티체에서 서쪽으로 370km, 부다페스트 팀은 동쪽으로 480km, 빈 팀은 남쪽으로 300km 떨어져 있어 이곳까지 당일 왕복이 가능했다. 

세 팀이 모두 사건 당일을 전후해 브르베티체로 이동했는지 아니면 그중 한 팀만이 이곳으로 이동했는지도 명확하지 않지만, 프라하로 입국했던 2명의 요원이 현장에 폭발물을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이들은 IMEX 그룹에 이메일로 10월 13일에서 17일 사이에 무기 구매 협상을 위해 브르베티체를 방문할 것이라고 통보했었으며, 10월 13일에는 브르베티체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떨어진 오스트라바로 이동해 그곳의 호텔에 투숙했었다. 따라서 이들은 10월 13일에서 16일 사이에 IMEX와의 미팅을 구실로 현장을 방문했고 그때 폭발물을 설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브르베티체 폭발 사건 직후에 이들은 곧바로 빈 공항으로 이동해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따라서 사전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원격으로 이를 제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빈에 머물던 아베랴노프는 10월 16일 오후 6시 17분 빈 공항을 통해 모스크바로 출국했고, 예조프는 11월 3일까지 빈에 머물다 모스크바로 출국했다. 이 기간 중 예조프가 무엇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부다페스트로 입국한 요원들은 이미 폭발 사건 하루 전에 부다페스트를 떠났기 때문에 이들이 직접 폭발을 주도했던 것 같지는 않다.

2015년 4월, 불가리아
브르베티체 폭발 사건 6개월 뒤인 2015년 4월 23일 GRU 요원 3명이 가명을 사용해 불가리아 소피아에 입국했다. 이들이 입국한 지 닷새 뒤인 4월 28일 불가리아 무기 중개업체인 EMCO의 대표 게브레프(E. Gebrev)와 그의 아들 그리고 회사 임원이 노비촉 계열 독극물에 중독된 채 발견되었다. 당시 게브레프의 자동차 손잡이에 독극물이 묻어 있었는데, 게브레프 일행이 모두 이 독극물에 접촉해 중독되었다. 세 명 모두 목숨을 건졌지만, 약 한 달 뒤 흑해 연안의 게브레프 소유의 별장에서 다시 노비촉 테러가 벌어졌다.  

불가리아 당국은 러시아 정보부가 이 사건을 벌였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이후 계속해서 이 사건을 추적해왔는데, 2019년에 불가리아 검찰은 2018년 스크리팔과 그의 딸을 독살한 바로 그 인물이 2015년 게브레프 테러 당시 소피아에 머물렀던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게브레프 테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했다. 당시 불가리아는 이 사건과 관련해 자국민 6명을 간첩 혐의로 체포했고, 러시아 외교관 2명을 기피인물로 지정해 추방했다.

체코 정보부와 불가리아 정보부는 두 사건이 벌어졌던 시기에 같은 인물들이 현장에 있었다는 점에서 2014년 10월 체코의 폭발 사건과 2015년 4월 불가리아 무기상 테러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더군다나 독극물 테러를 당한 게브레프는 2014년 말에 브르베티체 탄약과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판매할 예정이었다. 당시 동부 우크라이 나에서는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정부군의 무기에 장착 가능한 탄약이 브르베티체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부군에게는 이 탄약과 무기 공급이 전투의 승패를 가를 중요한 변수였다.

러시아의 영웅들
이런 사실에서 2014년 브르베티체 폭발과 2015년 불가리아 테러는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우크라이나 정부군에게 탄약과 무기를 공급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에게 타격을 주면 누가 이득을 보게 될지는 분명했다. 한편 브르베티체 폭발 사건 직후인 2014년 12월 그리고 불가리아 독극물 테러 사건 직후인 2015년 5월에 두 작전에 참여한 GRU 요원들에게 러시아군 최고 훈장이 수여되었고 ‘러시아의 영웅’ 칭호가 붙여졌다. 또한 이들에게는 부상으로 모스크바 시가 보유하고 있던 아파트 한 채씩 지급되었다. 

체코의 대응과 러시아의 보복
바비쉬 총리는 브르베티체 사건과 독극물 테러가 GRU의 소행이라고 밝히면서도 러시아와의 확전을 꺼리고 있다. 따라서 바비쉬 총리는 해당 사건은 러시아 정부가 아닌 GRU 단독의 범행이라고 강조하면서 GRU가 체코-러시아 사이의 외교 관계를 파괴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난하고 정보원으로 의심되는 러시아 외교관 18명의 추방을 명령했다. 한편 체코 경찰은 2014년 브르베티체 폭발 사건과 2015년 게브레프 테러 사건 그리고 2018년 스크리팔 암살이 모두 같은 GRU 요원에 의해 자행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체코가 러시아 외교관의 추방을 명령한 지 하루 만에 러시아 외무부는 주러 체코 대사 피본카(V. Pivonka)를 초치해 체코 외교관 20명을 외교적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정해 24시간 이내에 러시아에서 떠날 것을 명령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2014년 10월 폭발사건의 배후에 GRU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면서 체코 측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을 ‘외교적 도발’로 규정했다. 러시아는 이 사건의 배후에 러시아에 적대적인 미국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체코의 외교적 도발 행위를 기획한 세력들이 양국의 정상적 관계를 파괴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체코 외무장관 쿨하넥(J. Kulhanek)은 러시아의 보복 조치에 대한 재보복 조치로 체코 주재 러시아 외교관 수를 러시아 주재 체코 외교관의 수와 동수로 맞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63명의 추가 추방을 암시했다. 다만 쿨하넥 역시 바비쉬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확전을 원치 않는다며 이번 추방 조치는 러시아인이나 러시아 국가 자체에 대한 반대나 대응이 아니라, 체코에서 암약하는 러시아 정보요원들의 적대적 행위에 대한 대응 조치라고 강조했다.
 
제만의 음모론과 체코 정치계의 분열
러시아와의 강 대 강 대립을 피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받는 수준에서 사건을 마무리 짓고 싶어하는 바비쉬 총리의 바람과는 달리, 러시아를 견제하는 사회민주당과 야당들은 일제히 러시아의 테러를 비난하고 나섰다. 특히 사회민주당 소속의 하원 외무위원장 베셀리(O. Veselý)는 2014년 폭발 사건을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이후 벌어진 가장 심각한 영토 침공으로 규정하면서 러시아를 맹비난했다.

이런 와중에 대표적인 친러파 밀로시 제만( Miloš Zeman) 체코 대통령이 이 논쟁에 끼어들면서 이 사건이 체코-러시아 사이의 외교관계뿐만 아니라 국내의 친러파와 러시아 견제파 사이의 대립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사 갈등, 러시아산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 V를 둘러싼 논란,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로스아톰(Rosatom)의 원전 수주 문제, 러시아의 가짜뉴스 유포와 친러파 양성을 위한 ‘하이브리드전 전략’을 둘러싸고 그동안 체코 정치계는 친러파와 러시아 견제파 사이에 충돌이 이어져 왔었다. 이때마다 제만을 중심으로 한 친러파 정치인들이 러시아를 두둔하면서 오히려 사건을 더욱 크게 만드는 역할을 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스푸트니크 V의 구매와 접종을 둘러싼 찬반 논쟁에서 러시아산 백신 찬성파인 제만은 반대파인 보건장관 블라트니(J. Blatný)와 외무장관 페트르지첵(T. Petříček)을 해임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외무장관 페트르지첵은 스푸트니크 V와 로스아톰이 체코의 인간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 적극적으로 이를 반대해왔었지만, 제만 대통령은 총리를 압박해 페트르지첵 장관을 쫒아내 버렸다. 문제는 페트르지첵이 소속된 사회민주당이 바비쉬 총리 소속 긍정의 당(ANO)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파트너 정당이라는 점인데, 이 사건을 계기로 총리 불신임과 연정 붕괴 가능성이 있어 2021년 10월로 예정된 총선까지 바비쉬 총리가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동안 제만 대통령은 번번이 러시아를 두둔하면서 오히려 더 큰 논란을 불러왔다. 그는 지난 2018년 스크리팔 암살 사건 당시 러시아만이 테러에 사용된 노비촉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러시아를 두둔했고, 러시아를 최대 위 협국으로 경고하는 체코 정보부를 ‘아마추어 같은 멍청한 정보부’라고 맹비난하기도 했었다. 제만은 브르베티체 사고에 대한 이번 바비쉬 총리의 발표를 반박하면서 폭발과 테러 사건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증거는 없으며, 자신은 그런 증거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러시아를 신뢰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제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2014년 사건을 다시 꺼내 든 것은 듀코바니에 예정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입찰에 러시아의 로스아톰을 배제하기 위한 음모일 수 있다며 뜬금없이 원전 음모론을 꺼내들었다. 실제로 체코 정부는 4월 20일 러시아 국영 로스아톰을 원전 입찰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중국의 광핵그룹(CGN)도 배제된 상황에서 60억 유로 규모의 듀코바니 원전 입찰자는 이제 프랑스의 EDF, 한국의 한수원 그리고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만이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제만 대통령의 러시아 편들기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스크리팔 사건 당시 체코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과 러시아의 맞추방 그리고 그 이후에 거세게 진행되고 있는 양국의 과거사 논쟁으로 이미 체코인들 사이에서 반러 정서가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많은 체코인들이 러시아를 최대의 위협국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러시아의 로스아톰을 원전 입찰에서 배제하는 것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번 총리의 발표에 따라 러시아에 분노한 시민들이 러시아 대사관 앞에 양변기에 앉아있는 나체의 푸틴 인형을 설치하면서 ‘벌거벗은 살인마’로 지칭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U와 NATO 그리고 러시아
NATO와 EU 회원국 대부분은 동맹국 체코와의 협력을 약속했다. 한 NATO 인사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러시아 정보부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규정했고, 독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발트3국, 슬로바키아 등도 러시아를 비난하고 체코 지지를 선언했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는 각각 1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스파이 행위로 추방했고, 리투아니아는 2명의 외교관을 추방했다. 슬로바키아와 폴란드도 각각 러시아 외교관 3명을 추방하면서 체코 지지에 동참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헝가리가 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향후 비셰그라드 협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의 폭발 사건을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NATO, EU에 공동 조사를 제안하고 나섰다. 그러나 적어도 당분간은 체코-러시아 관계 악화는 물론 EU-러시아 사이의 관계 악화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러시아가 서방세계와의 관계를 최악으로 끌고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이미 바비쉬가 제안했던 바와 같이, GRU의 단독 범행으로 꼬리를 자르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체코와 서방세계가 러시아의 이러한 꼬리 자르기를 믿지는 않겠지만, 러시아와의 확전을 막을 수 있다면 GRU에 책임을 뒤집어씌워 사건을 축소하는 것이 체코나 서방세계가 원하는 결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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