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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크로아티아의 유로 도입: 배경과 기대 효과

크로아티아 Levi Nicolas Vistula University Lecturer 2023/03/07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인구 400만 명 규모의 크로아티아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한 2013년에서 9년이 지난 2022년 12월 31일을 기해 기존의 자국 통화 쿠나(HRK)를 폐기하고 유로(Euro)를 공식 도입했다. 이로써 1994년 5월 30일부터 크로아티아에서 통용되던 쿠나는 그 소임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크로아티아는 자국 경제 구조를 강화 및 안정화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목표 아래 유로존(Eurozone)의 20번째 가입국이 되었으며, 이 밖에 4억 명 이상의 가맹국 국민들이 일부 유럽 국가의 국경 통제를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솅겐협약(Schengen Agreement)에도 27번째로 참여했다. 유로존이나 솅겐협약 가입은 유럽 지역과의 경제 통합에 동반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로, 독일 등 여타 유로존 국가에 비해 빈곤한 편에 속하는 크로아티아(Eurostat, 2023a) 같은 나라도 EU와의 통합 심화를 바탕으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다른 유로존 회원국과의 동질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현재 크로아티아 국민들은 전반적으로 유로존 가입에 폭넓은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주요 근거로 하는 유로 도입 회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따라서 크로아티아 정부는 유로존 가입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적극 노력해야 한다. 물론 유로 도입 반대론이 큰 힘을 얻었던 여타 중·동부 유럽 국가의 역사적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일단 신규 통화가 도입되어 원활히 통용되기 시작하면 반대 여론이 잦아드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기에, 크로아티아 내  유로 도입 반대론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수그러들 것으로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크로아티아가 유로존에 가입한 배경
크로아티아가 유로존에 가입하게 된 배경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지목해 볼 수 있다. 첫째, 크로아티아는 이미 다른 유럽 국가의 통화를 자국 내에서 오랫동안 활용한 역사가 있다. 예를 들어 지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크로아티아에서는 독일의 유로 도입 이전 화폐였던 마르크(DEM)가 주요 거래 수단으로 통용되었으며,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의 독립 당시 은행 예치금의 대부분도 마르크로 표기되어 있었다. 크로아티아는 이처럼 외국 통화를 자국 경제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지난 30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매우 낮은 수준에서 통제할 수 있었고, 1994년부터 2021년까지 쿠나의 화폐 가치 변동폭도 10%를 넘기지 않았다.

이 밖에도 크로아티아에서는 대출금과 예치금 모두를 유로로 표기하는 경우가 잦았으며, 이 때문에 유로는 결제용 통화, 은행계좌 단위, 그리고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법정 통화인 쿠나와 공유해 왔다. 다만 여기에서 발생한 부작용으로는 금융 체계의 파편화(Fragmentation)와 결제 통화의 불일치 문제가 있는데, 이 중 후자는 스위스 프랑(CHF)으로 표기된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는 가계에 특히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많은 크로아티아 가계는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소비자용 대출 상품 중에서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외국 통화 표기 상품을 선택했고, 따라서 대출금 상환을 위해 쿠나로 벌어들인 소득을 외국 통화로 환전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통계에 따르면 유로가 공식 도입되기 이전부터 크로아티아의 다양한 대출상품 중 유로 등 외국 통화로 표기된 상품의 비중은 90%에 달했다(Dumičić, Ljubaj & Martinis, 2018: 3).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2008년의 세계 경제 위기가 발생하며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폭등하자 다수의 크로아티아 가계는 극심한 금융 불안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물가 연동형 및 변동형 금리 조항이 적용되면서 상환 부담이 크게 올라가자 이를 견디지 못한 많은 이들이 파산하는 결과를 맞았다. 특히 소득과 상환금이 서로 다른 단위로 표기되는 통화 파편화의 문제는 국민들에게 대출 및 환율 리스크를 더 크게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크로아티아가 유로존에 가입하면 이와 같은 리스크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유로존 가입을 통한 리스크 완화론은 유로 도입 지지 캠페인을 전개해 온 크로아티아 당국이 거듭 강조한 사항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Zagreb)에 소재한 크로아티아 중앙은행(NHB)은 2018년부터 해당 내용을 주제로 한 홍보 캠페인을 전개했고, 대민 홍보라는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유명 공직자를 동원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크로아티아 정부는 유로존 가입이 상당한 경제·정치적 성과이자 크로아티아의 미래 경제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Dumičić, Ljubaj & Martinis: 2018: 2).

크로아티아가 유로존에 가입하게 된 두 번째 배경으로는 크로아티아 국내 주요 정당 간에 유로 도입을 긍정하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재 크로아티아 정계에는 정책이 현실성과 실용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EU 경제통화동맹(EMU, Economic and Monetary Union) 가입을 비롯한 유럽과의 완전한 통합을 필수 전제로 삼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 EU 통합의 성질과 방향성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는 주체는 비주류 정당으로 국한된다.

크로아티아에서 상술한 공감대를 더욱 강화한 요소로는 각종 EU 재정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 심화, EU식 거버넌스 및 감독 체계의 적극적 도입, 그리고 일부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EU가 여전히 회원국 간 평화와 번영, 연대를 주도하는 엔진이라는 폭넓은 여론 등을 들 수 있다. 다만, 유로존 가입 긍정론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유로 도입 결정의 근거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그 대신 NHB와 크로아티아 재무부가 주도한 홍보 캠페인이 공론의 중심이 되는 아쉬운 부분이 있기는 하다. 

유로 도입의 기대 효과 
유로 도입은 크로아티아 경제에 여러 혜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며, 그중 첫 번째는 크로아티아 기업이 기존의 환율 리스크 없이 유로존 국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단일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 크로아티아 기업이 수출하는 상품의 절반 이상은 유로존으로 향하고, 반대로 크로아티아로 들어오는 수입품의 60% 이상도 유로존에서 나온다. 따라서 유로존과 솅겐협약 가입은 크로아티아와 유로존 사이의 무역을 촉진하고, 크로아티아 기업이 EMU의 가치사슬(Value Chains)에 통합될 수 있도록 돕게 된다. 아울러 관광 강국인 크로아티아가 유치하는 해외 관광객 중 70% 이상이 유로존 회원국 국민이라는 점에서 유로 도입은 관광 유치 증대 효과도 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국내총생산(GDP) 규모 성장에도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Gauret, 2023).

유로존 가입은 금융 측면에서도 크로아티아에 다양한 이익을 준다. 먼저 크로아티아가 지난 수년간 여타 유로존 국가와의 통합 강화를 추진한 덕분에 크로아티아의 국채 금리는 여타 유로존 국가에 근접한 수준까지 내려갔다. 그 결과 크로아티아 정부와 기업, 가계는 낮은 금리에 재원을 조달할 수 있었고, 이 점은 국가적 투자 및 성장 잠재력 증대라는 효과로도 이어졌다. 또한 2022년 7월에 EU 이사회(Council of the EU)가 크로아티아의 유로존 가입을 승인하자 여러 신용평가사가 집계하는 크로아티아의 국가 신용도도 상승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출 경로가 늘어나면 크로아티아는 ▲투자자 다각화 ▲금융시장 접근 확대 ▲금리 부담 경감 ▲리스크 관리 원활화 ▲부채 도입 역량 강화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한 국제 공용 통화 중 하나인 유로를 도입한 국가는 대출도 비교적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데, 이는 금융 위기 발생시 유럽중앙은행(ECB)이 반드시 개입해 유로존 국가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시장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크로아티아의 금리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중부 유럽 국가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인데, 이 역시 세계 금융시장이 크로아티아의 유로존 가입을 사전에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비록 2022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대형 악재가 발생하면서 크로아티아의 금리도 다른 중동부유럽 국가들처럼 이전보다 올라갔지만, 그 상승폭은 위에서 열거한 유로존 미가입 국가에 비해 크지 않다.

마지막으로 유로 도입은 크로아티아에 단기적  물가 변동을 초래할 수는 있더라도, 장기적 물가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12월에 집계된 크로아티아의 연율 인플레이션은12.7%를 기록해 유로존 평균인 9.2%에 비해 다소 높았으나(Eurostat, 2023b), EU 회원국 중 유로를 도입하지 않은 폴란드나 헝가리 등 중·동부 유럽 국가는 훨씬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현재 크로아티아가 겪고 있는 에너지 및 식품 가격 상승은 유로존 가입이 아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외부 충격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크로아티아-유로존 통합의 한계
크로아티아는 2023년부터 유로를 공식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가입에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 모두를 충족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EU 회원국이 유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국내 법령을 유관 분야 EU 법령과도 합치되도록 개정하고 여타 가입국과의 경제적 통일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특히 EU 회원국이 1991년에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에서 합의한 일명 수렴조건(convergence criteria)은 물가, 환율 안정성, 장기 금리에 중점을 둔 일련의 거시경제적 지표로 구성되는데, 크로아티아는 GDP 대비 부채 규모가 70%를 기록해 해당 조건이 목표로 제시하는 60%를 달성하지 못했다(Dan 2019: 20). 이외에 EU는 유로존 가입 신청국의 평균 물가상승률이 일정 기준 이하일1)  것을 경제적 조화 조건의 하나로 요구하나, 크로아티아는 이 조건에도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결론
유럽 각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시각에서 크로아티아의 유로존 가입은 긍정적인 신호로 여겨진다. 이는 유로존 가입국 확대가 2008년의 금융 위기, 그리고 201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 위기에도 불구하고 유로라는 단일 통화가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유로가 단순한 경제나 금융 분야의 수단으로 국한되지 않고 유럽 통합이라는 정치적 목표 달성에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크로아티아는  폴란드형 제조업 경제보다는 스페인이나 그리스형 서비스 경제에 가깝다는 점에서(Švarc & Dabić 2019:1484) 유로존 가입 협상에 타국보다 개방적 자세로 임하며 유로 도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다만 크로아티아 이전의 유로존 가입 사례는 2015년의 리투아니아가 마지막이었고, EU 회원국 모두가 특정 요건에 도달할 경우 언젠가는 유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에도 불구하고 근시일 내 유로존 추가 확대 정황은 감지되지 않는다. EU의 장기 회원국인  덴마크는 유로 도입 거부권을 공식 승인받았고(Tokarski & Funk 2019, 2), 스웨덴과 폴란드 등 일부 EU 회원국도 경제적 유인이 충분치 않다거나 주권의 부분적 포기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유로 도입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현재 여전히 독자 통화를 사용하는 7개 EU 회원국 중에는 유로 도입 의사를 표명한 국가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수렴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에 유로존 가입 승인 전망이 불투명하며, 이 중에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경제적 안정성 부족이 발목을 잡는 사례에 해당한다. 불가리아는 2024년 1월 1일부로 자국 통화 레프(BGN)를 폐기하고 유로를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와 EU 이사회는 아직 가입 조건 모두를 충족하지 못한 불가리아의 유로존 가입을 완전히 승인하지 않은 상태이다. 한편 루마니아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2028년까지 유로존 가입을 이루어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크로아티아의 유로존 가입은 EU의 무게중심이 유럽 동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으로서의 의미도 함께 지닌다. 2022년 2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이후 구소련 회원국이었던 우크라이나, 조지아, 몰도바는 2~3월에 걸쳐 EU 가입을 새로이 신청했으며, 이 중에서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는 6월에 공식 후보국 지위를 부여받았다. 또한 동년 12월에는 코소보가 EU 가입 신청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EU 가입 후보국 지위로 격상되었다. 이처럼 EU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의 범위가 기존 유럽의 중심에서 벗어난 발칸반도나 코카서스 지역으로 확대되어가는 상황에서, 크로아티아의 유로존 가입은 다른 여러 나라도 따를 수 있는 모범 선례를 만들어낼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1) EU 회원국 중 물가상승률이 가장 낮은 3개국 평균을 1.5%p 이상 초과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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