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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벨라루스-중국 전략적 밀월과 양국 정상의 의중

벨라루스 Levi Nicolas Vistula University Professor 2023/04/17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2022년 2월 24일에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유럽의 사회적 맥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함과 동시에 국제 정세도 크게 뒤흔들었다. 러시아의 핵심 동맹국이었던 벨라루스는 비록 이번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군이 2022년 3월에 자국 영토를 경유해 우크라이나의 키이우(Kyiv)를 목표로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공세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한편 중국은 영토주권을 주장하는 우크라이나와 안보위기 해소를 주장하는 러시아의 입장 모두를 지지한다는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규탄을 거부하고 국영 언론사를 통해 러시아 측의 관점을 옹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중국과 벨라루스 모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적으로 결부되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이번 분쟁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벨라루스와 중국의 경제협력 사례
벨라루스와 중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과학 및 혁신기술에 관한 협력사업을 전개해 왔으며, 2002년에는 경제협력과 관련한 행동계획1)을 발표하면서 지역 간 협력 강화를 위한 체계적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Zalessky 2020). 이어 2014년 7월에는 중국의 간쑤성(Gansu Province)이 벨라루스와의 무역 및 경제협력과 합작사업, 기업 간 계약을 촉진한다는 목적에서 벨라루스에 대표부를 설치했다. 벨라루스와 중국은 보다 최근인 2022년 9월에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 관계를 정식으로 형성했고, 2023년 3월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Alexander Lukashenko) 벨라루스 대통령이 방중했을 당시에는 양국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모범적인 양자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을 공약하면서 다수의 협력 문건에 서명했다. 이 때 양국이 체결한 합의문은 경제·무역, 관세, 과학·기술, 보건, 관광·스포츠, 지역별 사안 등 다양한 영역을 두루 포괄하며, 각급 정부기관 사이에 체결된 합의문은 27건, 그리고 산업 및 농업을 비롯한 다양한 부문의 민간 주체들이 체결한 상업 계약은 8건이다(Эксперт: Лукашенко ищет в Китае противовес Кремлю: 2023).

벨라루스와 오랜 기간에 걸쳐 경제적 관계를 맺어 온 중국은 최근 대규모 사업의 투자자로 부상했는데, 중국이 자금을 댄 벨라루스 현지 사업의 대표적 사례로는 2015년에 출범한 자유무역지구 산업단지 조성을 들 수 있다. 민스크(Minsk) 인근에 소재한 이 대규모 산업단지는 ‘중국-벨라루스 산업단지’라는 명칭 이외에도 ‘그레이트 스톤(Great Stone) 단지’라는 별명을 지니며, 벨라루스가 중국과 진행한 합작사업 중에서도 중요도가 가장 높았다. 특히 시진핑(Xi Jinping) 중국 국가 주석은 벨라루스를 국빈 방문한 2015년 5월에 이 산업단지를 ‘실크로드 경제벨트(Silk Road Economic Belt, 일대일로 구상의 이칭)의 진주’라고 부르면서 해당 사업이 중국에 지니는 전략적 성격을 드러냈다.

벨라루스 통계청(National Statistical Committee)이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그레이트 스톤 단지에 소재한 기업이 2022년에 거둔 순수익(Net Profit)은 전년 대비 144%나 증가한 1,400만 달러(한화 약 180억 원)를 기록했다. 현재 이 곳에는 기계공업, 전자상거래, 신소재, 동양의학, 인공지능, 5G 네트워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107개 기업이 입주해 있고, 투자 금액 총합은 13억 달러(한화 약 1조 7,000억 원)를 넘어선다(Китай и Беларусь активно развивают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о всех областях: 2023).

벨라루스와 중국이 참여하는 경제협력 사업의 사례는 비단 그레이트 스톤 단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례로 중국의 민간 자동차 기업인 지리(Geely)는 벨라루스에서 자동차를 생산 중이고(Richet 2017: 58.), 2023년 3월에는 중국제일자동차그룹(FAW Group, 디이자동차)도 벨라루스에 자사 홍치(Hongqi) 브랜드 자동차 생산 공장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참고로 루카셴코 대통령이 방중 당시 시용했던 차량도 제일자동차그룹의 모델이었다(китайские-автомобили: 2023).

개별 사업을 넘어서 보다 넓은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중국과 벨라루스가 최근 양자관계를 발전시키며 교역 규모를 크게 늘린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통계에 의하면 양국의 2022년도 교역액은 전년 대비 33% 늘어나 50억 달러(한화 약 6조 5,000억 원)를 넘어섰고, 특히 중국의 벨라루스산 농산물 수입액은 6억 4,900만 달러(한화 약 8,500억 원)를 기록해 전년 대비 52% 증가했다(Китай и Беларусь активно развивают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во всех областях: 2023). 여기서 한 가지 인상깊은 사실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양국 간 교역이 오히려 늘어났다는 점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중국과의 협력 확대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과학·기술, 산업, 농업, 관광 등을 유망 부문으로 꼽았다. 그는 이외에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화물철도망과 각종 산업단지 건설 사업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한편 지역 간 교류와 문화적 상호이해를 촉진하는 중국 기업의 투자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양국간 교류가 활발한 교육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교육기관 사이의 직접 협력에 관한 약 530개의 합의문이 체결되었고, 학생교류도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현재 벨라루스에 유학 중인 중국인 학생은 약 8,000명, 중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벨라루스인 유학생은 약 500명에 달한다(Беларусь - Китай: подписано 17 новых соглашений в области образования: 2023).

한편 벨라루스와 중국 간 경제교류는 전략적 성격도 지니고 있는데, 루카셴코 대통령은 중국과의 협력 강화 의사를 밝히면서 특히 제3국 시장으로의 상품 및 서비스 진출을 관심 대상으로 언급했고, 미국의 주장대로 중국이 러시아로의 무기 수출을 고려하고 있다면 벨라루스를 경유국으로 이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참고로 오늘날 세계 4위 무기 수출국인 중국은 이미 러시아에 비살상용 장비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Jason Li: 203).

외국인직접투자(FDI) 관점에서 보면, 2021년 말 기준 중국에서 벨라루스로의 투자 규모는 7,500만 달러(한화 약 984억 원)의 직접 투자를 포함하여 1억 1,000만 달러(한화 약 1,443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의 직접투자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부문은 산업, 건설, 운송 및 물류 부문이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벨라루스에 대한 FDI 중 중국의 기여도는 2%에 달한다. 또한 중국은 벨라루스의 3대 무역 파트너 중 하나로, 2022년 기준 양국간 교역은 전년 대비 13% 성장한 58억 달러(한화 약 7조 6,000억 원)를 기록했다. 중국의 대벨라루스 수출은 벨라루스 전체 수입의 약 12%를 차지하며, 벨라루스의 대중국 수출은 중국의 총 수입 중 약 0.3%를 차지한다. 이 같은 양국간 교역 추세를 견인하는 품목은 비료 수출 증가에 있다. (투자: 벨라루스 경제부).

루카셴코 대통령과 시 주석의 관계
루카셴코 대통령은 2023년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3일간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면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이 자리에서 여러 협정에 서명하면서 양국관계를 매우 가까운 친구 사이로 묘사하며 서로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았고, 여기에 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공유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아울러 루카셴코 대통령은 유럽에서 회의적 반응을 보이던 중국의 우크라이나 평화 계획을 추켜세웠고, 일방적 제재에 반대한다는 언급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 진영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벨라루스의 그레이트 스톤 단지를 언급하는 일을 잊지 않았으며, 특히 시 주석은 해당 산업단지와 같이 중국-벨라루스 간 경제 및 무역협력을 더욱 발전시켜 중국-유럽 화물철도망 건설 사업을 포함해 일대일로 구상을 완성하는 데 양국이 함께하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벨라루스와 중국의 정상은 서로를 잘 아는 사이이다.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외국 지도자로 알려진 루카셴코와 회담하며 러시아 정상의 의중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일을 즐기는데, 이번 회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자국의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시 주석이 푸틴의 전쟁 수행 의지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필요했다. 이 점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은 중-러 정상의 이상적인 중재인으로, 시 주석이 그를 초청해 베이징에서 대대적 환영 행사를 개최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반대로 1994년부터 집권해 온 루카셴코 대통령도 지금까지 12번이나 만남을 가진 시 주석을 잘 알고 있으며, 그는 푸틴 대통령처럼 중국 외교계 용어를 자주 인용한다. 일례로 중국 지도자들은 귀빈을 대접할 때 상대방을 가리켜 오랜 친구를 뜻하는 중국어 표현인 ‘라오펑유(老朋友)’로 부르는데, 중국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이 일정을 마치고 중국을 떠날 때 시 주석을 이 단어로 호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러한 외교적 수사 외에도 강경한 발언을 자주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2023년 2월 중순에 민스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만약 벨라루스가 공격받을 경우 즉각 대응에 나설 예정이기에 그렇게 되면 전쟁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는 강도 높은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다만, 2022년 12월 말에 우크라이나군 소속 미사일이 의도치 않게 벨라루스 영토에 떨어졌을 때에는 루카셴코 대통령도 확전을 부추기기보다는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행보를 보였다(Ebel, Abbakumova: 2023).

한편 2023년 3월 26일에 벨라루스는 자국 영토에 러시아군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한다는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로부터 며칠 전 열린 시 주석과의 회담 자리에서 기존 핵보유국이 아닌 외국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점에 합의를 본 상태였는데, 이러한 중-러간 합의에도 반하는 이번 조치는 결국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사실상 외국이 아닌 자국 영토의 일부로 여긴다는 점을 시사한다. 만약 벨라루스가 여전히 독립국이라는 관점을 채택할 경우, 푸틴 대통령의 행보는 핵 비확산에 관한 러시아의 기존 입장을 뒤엎음과 동시에 시 주석에게도 다소간의 외교적 망신을 안겨주는 성격의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상기 결정으로부터 하루 만인 3월 27일에 핵전쟁에 승자는 없다는 논리로 핵무기에 관한 전략적 리스크를 통제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공식 입장으로 표명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당초에 공약한 대로 향후 3개월 이내에 벨라루스 내 핵무기 배치에 필요한 모든 설비를 갖출 역량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등장하고 있기에, 앞으로 이 결정을 둘러싼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결론 및 평가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부터 7개월이 경과한 2022년 9월에 벨라루스와의 관계를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으로 격상했는데, 지금까지 중국이 같은 명칭을 부여한 국가는 파키스탄이 유일하다. 이 점은 벨라루스가 중국의 외교적 우선순위에서 러시아의 바로 다음에 해당하는 매우 높은 위치에 자리해 있음을 시사한다.

양국이 이렇게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 배경 중 하나는 두 국가 모두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소련 붕괴 이래 줄곧 벨라루스 대통령으로 군림해 왔고, 유엔(UN)은 그의 치하에서 자행된 수많은 고문 사례를 확인했으며, 국제 시민단체들은 그가 지금까지 치른 다섯 번의 선거 중에서 공정한 방식으로 승리한 것은 최초 1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중국 또한 1949년 이래 민주적 선거 없이 공산당이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로, 대만, 신장, 홍콩, 인권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서 자국을 확고히 지지해 주는 벨라루스를 우방으로 여긴다.

벨라루스와 중국은 체제상의 유사성 이외에도 세계 비전 측면에서도 통하는 바가 많은데, 일례로 양국은 이번 전쟁을 바탕으로 미국의 세계적 패권을 약화시키고자 한다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지닌다. 다만, 당초 낙승(樂勝)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분전(奮戰)에 가로막혀 크게 고전하는 양상이 전개되자 벨라루스와 중국 모두는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벨라루스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취약한 입지에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루카셴코 대통령은 중기적으로 벨라루스를 흡수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의도가 실현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자신이 가진 패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이 점에서 그가 추진하는 중국과의 밀월은 러시아에 대한 자국의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으로 보이나, 어쩌면 자국에서 혁명이 일어나 권좌를 빼앗길 경우를 대비해 안전한 도피처를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포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도자 개인의 의중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봐도 벨라루스와 중국 사이의 밀월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하며 서방의 제재 대상이 된 벨라루스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자국산 상품을 수출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되어준다. 반대로 중국에게 있어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정보원임과 동시에, 일대일로 구상을 통해 자국을 유럽으로 연결하는 물류 핵심지로서도 활약할 수 있다.





* 각주
1) 정식 명칭: 2003~2004년 벨라루스 상공회의소와 중국 국제무역촉진위원회를 통한 벨라루스-중국 간 무역 및 경제협력 개시를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 for the activation of trade and economic cooperation between Belarus and China through the Chamber of Commerce and Industry of Belarus and the Chinese Council for the Promotion of International Trade for 200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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