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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지역] 러시아 내 코미민족의 이주와 정착과정 (16세기-20세기 초)

러시아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김혜진 한국 시베리아연구 발간일 : 2012-05-31 등록일 : 2018-06-22 원문링크

개별 민족들의 러시아 내 이주를 연구하는 것은 러시아라는 국가의 구성원이 된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이해하는 동시에 현재 러시아의 다양한 민족 간 형성된 복합적인 관계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된다. 이 글은 러시아 내 수많은 민족들의 이주역사를 연구하려는 기획의 한 부분으로, 러시아 북서부에 거주하고 있는 코미민족의 예를 들고자 한다. 러시아에서 거주하는 코미인들의 대부분이 자민족 영토, 즉 코미공화국에 거주하고는 있지만, 역시 많은 수가 인근 우랄지역이나 시베리아 지역을 비롯하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중심지까지 분포하고 있다. 이 글은 코미인들이 민족영토를 떠나 자신의 생활공간을 확장해 가는 과정을 추적하여, 현재 존재하는 러시아 영토 내 코미 디아스포라의 형성 역사를 되짚고자 한다. 코미인들이 민족영토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 원인은 자연재해적, 정치경제적, 인구학적 상황으로 분석할 수 있다. 코미인들의 본격적인 이주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원정이 시작된 16세기에 시작되었다. 일찍부터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왔던 코미인들은 우랄 동쪽의 지리와 그곳에 거주하는 민족들도 잘 알고 있어 시베리아 원정대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다. 이 시기 코미인들의 이주는 시베리아의 러시아 편입과 그 지역의 도시 및 요새 건설을 위한, 주로 정치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반해 19세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이주는 이들의 경제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코미 영토의 북부에서 주로 순록사육에 종사하던 코미인들은 넓은 순록방목지를 찾아 우랄 동쪽의 한티인과 만시인, 그리고 네네츠인들의 영토와 북서쪽의 콜라반도까지 이주하였으며, 남부 출신 코미인들은 경작지와 목초지 부족으로 옴스크 주와 알타이 주로 이주하였다. 코미인들의 이주는 16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에 가장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집단화 정책이 시행되었던 1930년대부터는 소강기에 접어들었다. 스탈린의 집단화 정책으로 집단농장을 벗어난 이주는 사실상 금지되었고, 소비에트 시기 내내 주목을 끌만한 이주현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련 붕괴 후 코미인들은 분산된 형태로 더 다양한 지역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특정지역은 형성되지 못하였다. 현재 코미공화국 너머 거주하는 코미인들, 다시 말하자면 러시아 내 코미 디아스포라는 북우랄과 튜멘주, 콜라반도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이미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 일어난 이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이주한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거주해왔던 토착민족들의 거부에 부딪히기도 하였으나, 특유의 인내심과 적극성으로 정착에 성공했으며, 이주지 또한 확장되어 갔다. 이 시기 이주한 지역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코미 디아스포라의 주요 거주지로 존재한다는 것은, 코미 이주민들이 이주지를 자신들의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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