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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타지키스탄과 러시아, 군 기지 사용 연장 협정이 말해주는 것

타지키스탄 현승수 한양대학교 아태지역 연구센터 HK연구교수 2012/11/01

10월 5일 타지키스탄을 방문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타지키스탄의 에모말리 라흐몬(Emomalii Rahmon)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타지키스탄 영내에 있는 러시아 군 기지의 사용 기간을 향후 30년 연장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이로써 러시아군은 2042년까지 타지키스탄에 주둔할 수 있게 된다. 공교롭게도 라흐몬 대통령의 생일날 조인된 이 협정은 오랜 시간을 거친 협상과 노력의 산물이며 유라시아 지정학을 둘러싼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약소국 타지키스탄의 고충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협정으로 인해 러시아의 제201 차량화 보병사단은 타지키스탄의 주요 군사 시설 3곳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열린 9월 11일의 고위급 협상 직후, 러시아의 아나톨리 안토노프(Anatoly Antonov) 국방차관은 협상이 거의 성사 직전 단계에 와 있으며 10월 초 푸틴 대통령의 타지키스탄 국빈 방문 때 최종 타결될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있은지 수 주 후, 러시아 지상군 사령관인 블라디미르 치르킨(Vladimir Chirkin)은 러시아 라디오 방송국 <에호 모스크브이>(Ekho Moskvy)와의 인터뷰에서 협정이 연내에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동안 타지키스탄은 러시아에 군 기지를 빌려주는 대신 사용료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새로운 연장 협정을 통해 타지키스탄은 사용료 대신 타지크 군의 현대화를 위해 러시아 측으로부터 원조를 받게 되며, 동시에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도 확대하게 된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 관세동맹 체제에 타지키스탄이 가입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의 지원도 제공될 예정이다. 러시아의 군사 원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지만, 500만 달러에 달하는 마약 퇴치 비용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된 아편이 타지키스탄 국경을 통해 중앙아시아 전역과 러시아, 멀게는 유럽과 미주 등지로 확산되고 있어 국제사회의 골치 덩어리가 된지 오래며, 마약의 밀수와 밀거래에 타지키스탄 고위관료와 조직범죄 집단, 군과 경찰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라흐몬 정부는 그 대책에 부심해 왔다. UNDP(국제연합개발기구) 등 국제기구는 물론 세계 각국의 NGO 단체가 타지키스탄의 마약 문제 해결에 힘을 쏟고 있지만 상황은 눈에 띠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타지크 측은 이번에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군사 원조 이상으로 시급한 현안 두 가지가 해결되게 된 점을 크게 반겨하는 눈치다. 그 현안이란 러시아가 타지키스탄에 수출하는 가솔린에 대해 관세를 철폐해 줄 것과, 130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 내 타지크인 노동이민자들의 권익을 확대해 주는 것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타지키스탄에 가솔린을 수출하여 막대한 이득을 챙겨 왔는데, 2010년 타지키스탄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를 중단함으로써 가솔린 가격의 폭등을 초래했다. 더욱이 자국의 교섭력을 제고하기 위해 러시아는 모든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올해 10월 1일부터 발효시켰다. 이 법안이 CIS 최대 빈국이자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타지키스탄의 경제에 가져다 줄 파장은 예측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럽다. 하지만 기지 연장 협정 체결로 인해 타지키스탄은 관세 면제 혜택을 적용받게 된 것이다. 한편, 러시아 내 타지크인 이주 노동자들의 처우는 타지키스탄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타지키스탄의 총 가구 수 가운데 약 80%가 러시아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송금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이들 노동 이주자들의 송금액은 타지키스탄 GDP의 45.4%를 차지한다. 따라서 타지크 정부는 그동안 러시아에 대해 보다 융통성 있는 비자 정책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새로운 협정으로 타지크인들의 러시아 체류 비자가 현재의 1년에서부터 3년으로 늘어나고, 비자 갱신을 위해 러시아에 체재할 수 있는 기간도 현행 15일에서 30일로 길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번 협정의 체결이 반드시 러-타 관계의 밝은 미래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적으로 타지크 정부가 러시아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제 문제가 외교 문제로 비화된 사례는 최근에도 있었다. 타지키스탄이 추진 중인 로군(Rogun) 수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가 그것인데, 수자원이 부족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어느 한 나라가 수력발전소를 건설해 물을 가두어 두게 되면 주변 국가들의 원성을 사게 되어 있다. 문제는 로군 수력발전소의 건설 프로젝트가 전적으로 러시아의 투자와 지원(혹은 묵인)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며, 댐 건설로 수자원 공급에 타격을 입은 우즈베키스탄이 타지키스탄과 러시아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보이면서 3국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급기야는 2012년 여름,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러시아 주도의 지역 군사 협력체인 CSTO(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 집단안보조약기구)에 가입을 연기함으로써 푸틴의 유라시아 통합 구상에 비상이 걸렸다. 수력발전소의 건설에 사활을 건 타지키스탄으로서는 이같은 상황에서 러시아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는 노릇이니 러시아 측이 수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투자 조건을 더 까다롭게 하거나 투자를 지연시키는 등 부당한 조치를 취하더라도 이를 감내할 수밖에는 없다.

한편 2013년 대선을 앞둔 라흐몬 정부는 연료 가격을 낮추고 이주 노동자들의 권익을 향상시켜 줄 이번 협정으로 국민들의 지지도가 올라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타지키스탄 국내 정치의 뜨거운 감자는 바로 이 두 가지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라흐몬이 러시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사정은 또 있다. 현재 러시아에는 대표적인 타지크 반체제 인사인 우마랄리 쿠바토프(Umarali Quvatov)를 비롯해 <그룹 24>라는 이름의 반정부 조직 등이 활동 중이다. 만일 라흐몬 정부와 러시아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경우, 이들 반정부 인사들이 러시아 당국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도 있으며 그렇게 되면 장기 집권을 꿈꾸는 라흐몬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현지의 전문가들 중에는 이미 기지 사용 연장 협정이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성사될 것이라고 내다본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12년 7월 타지키스탄 동부의 고르노-바다흐샨(Gorno-Badakhshan) 자치주에서 발생한 총격전이 러시아의 입장을 강화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내막은 이렇다. 파미르(Pamir)라고도 불리는 타지키스탄 동부 산악 지역은 1992-97년에 발생한 타지크 내전에서 반정부 투쟁을 주도하는 세력의 거점이었다. 내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타지크 정부는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 지역의 마약 밀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타지키스탄 국가의 최대 난제 중 하나였다. 이 같은 불편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정부군은 파미르 지역의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를 공격했고 이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톨리브 아욤베코프(Tolib Ayombekov)와 그가 거느리는 무장집단을 습격해 다수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하지만 정부군의 지역 장악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으며 타지키스탄 안보가 위태롭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라흐몬 정권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여기에 러시아가 개입되어 있다는 음모론이 가세하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지난 9월, 고르노-바다흐샨 지역의 유력 인사인 이몸나자르 이몸나자로프(Imomnazar Imomnazarov)가 한 발언이 그 발단이었다.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몸나자로프는 과거에 그가 반정부 투쟁을 할 당시 외부세력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때로 타지크 정부는 우리가 탈레반과 협력하고 있다거나 우즈베크인들의 사주를 받고 있다고 비난한다. 어쩔 때는 러시아인들과 협력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중략) 나는 많은 다양한 세력들이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해 줬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몇 달 전에는 어떤 이들이 우리에게 700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한 적도 있다.” 이몸나자로프는 누가 그 많은 돈을 제공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러시아일 것이며 러시아가 배후에서 반정부 세력을 지원함으로써 타지키스탄 정부의 무능력과 러시아군 주둔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폭탄 발언이 있은 지 수 일 후에 이몸나자로프가 자택에서 의문의 피살을 당하자 러시아 개입에 대한 음모론은 거의 정설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 진위야 어떻든, 라흐몬 대통령에게는 이번 러시아와의 협정이 실보다는 득이 많은 거래처럼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타지키스탄의 젊은이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협정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또 러시아군의 주둔이 타지키스탄의 안보를 보장해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현지의 정치 평론가인 사이드뭇딘 두스토프(Saidmuddin Dustov)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국군 기지의 존재가 지역 안보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러시아 측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시리아에 주둔해 있는 최첨단 러시아 해군 기지는 왜 그 나라의 내전을 막지 못했는지 질문하고 싶다.”

어떤 이들은 이번 협정을 지난 9월 러시아가 키르기스스탄과 체결한 칸트(Kant) 공군기지의 사용 연장 협정과 비교하기도 한다. 당시 러시아는 기지 사용을 15년 연장하는 조건으로 4억8,900만 달러에 달하는 키르기스 측의 채무를 탕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군사 원조를 제공하고 캄바라타(Kambarata)-1 프로젝트 등의 수력 발전소 건설에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에서 일하는 키르기스인 노동자들의 경우, 현재 러시아 당국에 등록하지 않고도 6개월이나 체류가 가능하다는 점도 타지크인들의 콤플렉스를 자극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타지크 노동자들의 경우는 30일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볼 때, 러시아와 타지키스탄 사이에 체결된 이번 기지 사용 연장 협정은 단기적으로 타지크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타지키스탄의 국가 경쟁력과 지정학적 위상을 실추시킬 가능성이 크다. 외국군의 장기 주둔은 국가의 주권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도 힘들 것이다. 이러한 우려를 모르지 않을 라흐몬 대통령이 2013년 대선에서 집권 연장에 성공할 경우, 러시아의 일방적인 영향력 확대에 쐐기를 박기 위한 모종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소연방 해체 이후 독립한 중앙아시아 스탄 국가들이 자국의 생존 전략으로 취해 왔던 전방위적 균형 외교 전술은 말하자면 ‘양(兩)다리’ 내지는 ‘다(多)다리’ 작전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건 러시아건 어느 일국이 중앙아시아 역내에서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시도할 경우 이를 견제하기 위해 다른 강대국 세력을 끌어들여 그 안에서 이익을 취하는 전략이다. 지금 중앙아시아에서는 강대국들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00년 전의 거대게임(Great Game)이 재현된다고 보는 논자들이 많다. 하지만 21세기의 신거대게임은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마련한 게임의 룰을 강대국도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10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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