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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두바이 모라토리엄의 정치경제적 함의

아랍에미리트 서정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2009/12/07

세계를 놀라게 한 개발신화를 창조해 오던 두바이가 위기에 빠졌다. 최대 국영지주회사인 두바이월드가 채무상환유예를 전격 요청했다. 지난해부터 언급되던 두바이의 자금 위기설이 현실로 나타났다. 작은 나라에서 발생한, 그리고 불과 수백억 달러의 부채문제가 국내는 물론 세계 경제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지고 있다. 최고조 성장을 달리던 두바이의 위기가 국제경제와 투자자에게 '심리적' 충격을 준 것이다. 최근 언급되는 '출구전략'이 아직 시기상조임을 방증하기도 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두바이 사태를 지켜보는 아랍 세계는 두 가지 큰 시각으로 나뉜다. 일부에서는 두바이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미 중동의 허브로서 자리매김 했다는 시작이다. 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두바이의 지난 성장이 구조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두바이는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후자의 시각에 따르면 두바이는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추락에는 한계가 없다”


현재까지는 비관론이 더 큰 힘을 얻고 있다. ‘추락에는 한계가 없다.’ 28일자 이집트 일간 알-아크바르에 등장한 두바이 기사의 부제목이다. ‘꿈에는 한계가 없다. 마음대로 꿈꾸어라(Dreams have no limits. Go Further)’라는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쉬드 알 마크툼의 모토를 패러디한 것이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창조적 리더십을 발휘한 지도자와 두바이의 최근 고민을 지적하는 기사였다. 신문은 또 “지나친 사냥으로 매의 발톱이 다 빠져버렸다”라고 매 사냥 애호가 두바이 지도자의 무모한 성장전략을 꼬집었다. 매를 훈련시켜 토끼나 작은 사슴을 사냥하는 걸프 지역의 전통적인 스포츠가 매 사냥이다. 간혹 큰 먹이를 사냥할 때 매의 발톱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 두바이 지도자는 새로운 발톱이 나올 시간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매를 사냥에 내몰았다는 것이다.
아랍 언론조차 두바이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 동정을 보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는 있다. 두바이 지도자의 상징은 자신감이었다. 지나칠 정도이기도 했다. 두바이 위기설은 사실상 지난해 10월부터 나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셰이크 무함마드는 이를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다. 올해 4월 셰이크 무함마드는 특별 기자회견을 갖고 “두바이 경제에 최악의 시기는 지났다”고 선언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른 지역들이 큰 피해를 입은 데 비해 두바이 경제는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을 받았다”며 “앞으로 어떠한 위기가 닥치더라도 확신을 갖고 적절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의 사업 규모 축소 및 지연 발표가 잇따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건설 프로젝트들은 모두 완수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셰이크 무함마드는 오히려 두바이 경제에 대한 우려를 반박하기도 했다. 채무 의존도가 높은 두바이 경제의 취약성을 거론해 왔던 많은 서방과 아랍 언론의 보도내용에 대해 그는 “해외 언론들의 ‘융단폭격’에도 두바이 경제는 굳건한 상태”라며 “아랍권에서의 경제적 발전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흔히 그런 대접을 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언론의 보도 내용 그리고 국제 및 아랍권의 우려에도 콧방귀를 뀌는 그의 지나친 자신감에 아랍 언론도 등을 돌린 것이다.
사실 두바이의 고속 성장에 대해 아랍권은 내심 불만과 우려를 표명했었다. ‘지나친’ 개방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전통의 휴일인 금요일에도 업무가 이루어졌고, 술집과 디스코텍에서는 매춘도 성행했다. 사우디는 두바이와 접한 샤르자 토호국이 두바이의 지나친 개방 모델을 따르지 않도록 매년 수억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술과 매춘을 허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빚을 얻어 고작 하는 것이 화려한 건물과 외국 여성을 불러들여 술을 팔고 있다”라고 두바이를 비난하는 발언을 주변국 아랍인들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다.


실물없는 성장의 한계


두바이 성장전략은 외부로부터 마련된 자금을 이용한 공급주도형 모델이다.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려는 노력보다는 우선 공급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면서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문제는 이 공급이 지나치게 부동산 개발에 편향되면서, 거품 붕괴라는 큰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두바이는 자국 국민총생산(GDP)의 5배에 가까운 3000억 달러에 달하는 개발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했다. 사막 속 스키장, 7성급 초호화 호텔, 세계 최고층 빌딩, 세계최대 인공섬 등을 건설했다. 또 세계 최대의 수중호텔, 놀이동산, 연간 1억 명을 소화하는 세계 최대 공항 등도 진행하고 있었다.
샘플러(Jeffrey Sampler)와 에이그너(Saeb Eigner)도 그들의 2008년 저서 ‘모래에서 글로벌 실리콘으로’에서  “두바이가 먼저 자산을 창출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전략을 취해왔다”며 두바이의 공급주도형 개발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전략은 그 동안에는 두바이 성공신화를 가져온 과감한 전략이기도 했지만, 투자 규모의 과도한 확대로 두바이 금융위기를 불러온 핵심적 요인이기도 하다. 두바이 개발계획의 청사진인 비전 2010(Vision 2010)과 전략계획 2015(Strategic Plan 2015)에서도 공급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러한 공급 전략의 밑바탕에는 외자 조달이 놓여 있다. 두바이 금융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시작된 국제금융위기다. 두바이의 성장은 오일머니 덕이 아니다. 두바이 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이하다. UAE 전체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260만 배럴 내외이지만 대부분 아부다비의 몫이고, 두바이는 그 가운데 20만 배럴 정도를 생산한다. 그리고 대략 20년 이내에 두바이의 매장량은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두바이 지도자들이 석유가 아닌 다른 부문으로 경제의 활로를 찾고자 고민해 온 이유는 바로 이처럼 석유 매장량 자체가 극히 적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외부로부터의 투자에 의존한 성장전략을 추진하게 됐다. 다행히 9.11 테러 이후 서방의 금융제재를 우려한 아랍의 오일머니가 두바이로 몰려들었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초대형 건설 사업을 대규모로 발주해온 것은 아부다비, 사우디, 쿠웨이트, 이란 등 인근의 산유국들로부터 고유가에 따라 폭발적으로 늘어난 석유수입이 대거 유입된 데 힘입었다. 특히 아부다비가 가장 큰 투자자였다. 아부다비에서 두바이로 흘러온 자금은 국가 간 거래가 아니므로 국제수지에 잡히지 않지만 두바이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외자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 등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도 경제개발 초기에 외자에 의존해 개발을 추진해왔다. 이것이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개도국 외채위기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두바이의 경우처럼 짧은 시간에 자국 경제 규모의 몇 배가 넘는 개발 사업을 추진한 나라는 없다. 최근의 국제금융위기 속에서 두바이경제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큰 충격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수요를 예측하지 않고 외자를 들여와 사업을 먼저 벌려놓고 보는 공급주도형 전략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랍권 오일머니가 집중 투자된 미국에서 시작된 국제금융위기로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것이다. 막대한 차관을 들여 추진되던 공사의 대금 및 이자 상환이 불가능해진 것이 두바이 위기의 본질이다.


사태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두바이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는 안팎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단기간에 채무상환유예사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세계경제위기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두바이가 의존할 곳은 아랍이다. 특히 UAE 연방의 최대 토호국인 아부다비다. 실제로 이런 노력이 사태 이전에도 감지됐었다. 올해 들어 UAE의 여러 신문에는 셰이크 무함마드와 아부다비의 지도자 칼리파 국왕의 회담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두바이 지도자가 매달 한 번은 아부다비로 향하고 있다”라는 소문을 두바이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실제로 아부다비는 올해 초 100억 달러에 이르는 두바이의 채권을 매입해 주는 대가로 두바이가 자랑하는 에미리트항공 등 두바이의 주요 자산을 인수했다. 채무상환유예를 선언하기 수주 전에도 아부다비는 수억 달러의 채권을 인수했다. 지난 10월 경제전문지 알-아흐람 알-이크티사디는 “셰이크 무함마드가 군화 맨에서 애걸 맨으로 변신했다”라고까지 보도했을 정도다. 군화를 신고 두바이의 거대한 여러 공사현장을 매일 아침 순시하던 정력적인 지도자 셰이크 무함마드가 이제 헬기를 타고 긴급하게 아부다비를 드나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까지도 두바이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해온 ‘돈 줄’ 아부다비에 최근 셰이크 무함마드가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태 발생이후에도 아부다비는 두바이의 ‘구세주’ 역할을 나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두바이 재정부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직후 UAE 중앙은행은 11월 28일 자국 은행 및 외국계 은행 지점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유동성 지원창구(Liquidity facility)를 개설했다. 전날 셰이크 무함마드가 수도 아부다비에 있는 대통령궁을 방문해 셰이크 칼리파 UAE 대통령을 만나서 결정된 사항이다. 아부다비 정부는 또 두바이에 대해 무조건 지원할 계획은 없으나 사안별로 선택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UAE 연방헌법 상 7개 토호국은 상호 협력 및 지원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두바이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두바이 정부의 내적 노력도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지나친 국가 혹은 왕족 주도형 개발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이번 금융위기의 폭풍의 눈인 두바이월드 등 대부분 기업은 국가 즉, 왕족이 최대주주인 사실상 국영기업이다. 경제개발의 주체가 정부 혹은 왕족인 것이다. 셰이크 무함마드는 국가 지도자로서 두바이 주요기업의 사실상 CEO였다. 자신이 원하는 데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추진력을 가질 수 있지만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셰이크 무함마드가 기획하고 자금을 조성하고 추진해 오면서 개인적인 ‘꿈’이 지나치게 녹아있었던 성장전략이었다.


“두바이 재기 가능하다!”


2007년 ‘두바이 모델’이라는 저서를 내놓은 흐비트(Martin Hvidt)는 16가지의 발전모델을 추출해서 비교한 결과 앵글로 색슨 모델, 유럽대륙 모델 그리고 동아시아 모델 등 3가지 모델이 일반화할 수 있는 특징을 가졌다고 제시하면서, 두바이 모델은 그 3가지 모델과도 다른 특징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두바이의 발전모델이 다음과 같은 9가지 특징을 가졌다고 제시하고 있다. 즉 ① 정부(지도자) 주도형 개발 ② 신속한 의사결정과 개발 ③ 유연한 노동력 활용 ④ 공업화를 건너 뛴 서비스 경제의 창출 ⑤ 서비스 조달의 국제화 ⑥ 투자 기회의 창출 ⑦ 창출된 수요의 공급 ⑧ 브랜드 창출을 통한 시장 포지셔닝 그리고 ⑨ 세계 일류 파트너들과의 협력이다.
두바이의 재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위의 9가지 특징이 일구어낸 ‘선점효과’를 강조한다. 셰이크 무함마드가 주도하는 두바이는 그동안 혁명적 그리고 창조적 국가 개조(改造)의 길을 걸어왔다. 한낮에는 섭씨 50도를 웃도는 모래사막 위에 물류, 무역, 정보기술(IT), 의료, 미디어, 레저, 관광 등 세계 최고의 종합 허브를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이를 통해 두바이는 이미 중동 내에서는 위의 분야에서 허브 지위를 달성했다. 최소한 중동지역 내에서는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는 얘기다.
선점효과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바꾸어 말하면 두바이가 모든 면에서 잘했다기보다는 주변 국가들이 너무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 아부다비, 카타르, 쿠웨이트 등 주변국은 두바이보다 훨씬 더 큰 영토와 오일머니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이슬람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두바이는 이를 깨는 사고전환을 통해 개방정도, 경제제도, 투자환경 등에서 크게 앞서나가는 하부구조를 이미 상당히 구축했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보다는 과거도 돌아보며 현실을 직시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사태는 두바이에 따끔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지가 두바이의 미래에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90년대 말 금융위기를 극복했듯이 우리도 할 수 있다.” 최근 두바이 주민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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