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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러시아인의 의식구조와 政治文化

러시아 기연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2012/10/29

   통일 전이든 통일 후이든 앞으로 우리 한반도뿐만 아니라 21세기 전 인류의 공동운명체적 최대과제가 지구환경 보존과 식량, 에너지 문제라는 데는 전문가 학자들 사이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에 대비하여 우리는 국제적 차원의 지구환경 보존 사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미래의 식량과 에너지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길을 적극 찾아 나서야만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에게 해결의 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 바로 러시아의 극동 시베리아 지역이다. 게다가 이곳은 바로 푸틴 대통령이 오늘날 러시아의 미래를 걸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러시아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확실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해나가면서 한반도의 미래에 대비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러시아, 러시아인, 그들이 누구인가?’를 알아야만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의 의식구조와 그 의식구조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문화를, 보다 현실적으로는 그들의 정치문화의 본질을 이해해야만 한다. 오늘날 푸틴 대통령의 통치권력, 통치 스타일이 바로 러시아의 전통적인 정치문화의 바탕 위에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러시아, 러시아인, 그들이 누구인가?”는 러시아인들의 의식구조를 살펴봄으로써 파악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문화며 정치문화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민족이든 그 민족의 의식구조 형성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가 그들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인문 지리적 자연환경이요, 그 두 번째가 그들이 겪어온 역사적 경험이며, 마지막으로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종교(종교적 신념)이다.
 

   러시아 하면 우리는 지구자원의 무한대적 보고인 한없이 춥고 광대한 시베리아 대평원과 더불어 보드카의 나라, 푸쉬킨과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가  여전히 숨 쉬며 살고 있는 나라, 아름다운 볼쇼이의 발레리나들이 눈 오는 밤 모스크바의 거리 가로등 아래 춤추듯 걸으며 산책하는 나라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것은 역시 그 영토의 광대성이다. 러시아인들은 흔히 ‘영하 40도의 추위는 추위도 아니고, 주정 40도의 보드카는 보드카도 아니며, 400km의 거리는 거리도 아니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또한 ‘일본열도 정도는 뚝 떼어다가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에 집어넣으면 알맞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러시아연방의 전신인 소련은 그 영토가 2220만여 평방킬로미터로서 우리가 대국 또는 대륙이라고까지 부르는 중국에다 미국이나 캐나다, 다시 인도를 합친 것에 맞먹는 크기로, 한반도의 100배가 넘었다. 1991년 말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국제사회에 등장한 러시아 역시 그 영토의 크기는 구소련의 75%가 넘는 1700만여 평방킬로미터로 여전히 중국이나 미국 또는 캐나다의 배에 가깝다. 이처럼 광대무변하고 광막ㆍ광활한 땅을 운명적 생활무대로 하여 살게 된 러시아인들은 처음부터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자연에 대해 도전하기보다는 미르(mir, ‘농촌공동체’라는 말로 ‘우주, 세계’ 및 ‘평화’라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라는 공동운명체적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외경스러운 마음으로 묵묵히 자연환경에 적응해 가는 인종과 순응의 자세를 습득하게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러시아 민족은 처음부터 자연이라는 절대자에 대해 반항하기보다는 일종의 종교적 신앙심과도 같은 순종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광막한 대평원과 관련하여 러시아가 자랑하는 종교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쟈예프(N. A. Berdyaev, 1874-1948)는 이미 자신의 조국 러시아에 대해 “러시아 민족은 그 영토의 무한함과 불가피적인 자연환경의 힘에 의한 희생자...... 러시아의 혼(魂)은 러시아의 국토가 광대하고 망망하고 무한하다는 것과 일치한다. 즉 자연지리와 정신지리가 일치하는 것이다. 러시아 민족의 혼속에는 러시아 평원과도 같은 무한성을 향해 돌진해 나아가는 힘과 광막함, 그리고 끝없음이 자리 잡고 있다”라고 적절히 지적한 바 있다.
 

   바로 이처럼 끝없이 넓은 공간 속에서 원시적인 자연의 힘과 약한 형식의식 그리고 자연 지리적 특별한 경계선의 부재에 따른 이주의 용이함 때문에 내적 통제와 자기 한계의 부재, 무한함에 대한 형이상학적 갈구가 러시아인들의 마음속에는 자유에 대한 독특한 갈망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의식구조의 러시아인들을 수난과 단절의 역사 속에서 효과적으로 조직하여 국가와 민족의 생존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한곳으로 모아 끌고 나가는 것은 역대 러시아 통치자들의 숙명적 과제가 되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논리 속에서 러시아인들은 지배자나 피지배자 모두가 역사의 시작 초기부터 공동운명체의 절실함을 체득하게 되었고, 공동체 내의 문제해결을 위한 베체(vetche, ‘民會’ 일종의 마을회관 사랑방모임 같은 것)라는 회의체 모임에서 의사결정 방법으로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제적 일사불란함을 택하게 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베체의 만장일치제는 서구 의회민주주의의 모체가 되었던 그리스 아테네의 에클레시아(ecclesia, 민회)에서 행해졌던 다수결제와는 달리, 훗날 소비에트 민주주의 즉 레닌의 민주적 중앙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의 모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환언하면 러시아의 인문 지리적 자연환경은 러시아인들의 의식구조 속에 강력한 공동운명체(집단주의)적 중앙집권주의(collective centralism)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해주었던 것이다.
 

   인문 지리적 자연환경 다음으로 러시아인들의 의식구조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그들이 겪은 수난과 단절의 역사이다. 우랄산맥과 카스피해 서북안 사이에는 아시아 쪽으로 열려있는 폭 1300km의 커다란 간격이 있다. 이 공간은 기원전 7-8세기로부터 기원 후 13세기에 이르기까지 무려 2000여 년 동안 아시아 초원지대의 호전적인 유목민 무리들이 끊임없이 더욱 풍부하고 좋은 목초지를 찾아 또는 어떤 한 유목민족이 더 강력한 다른 유목민족에게 쫓기고 밀리면서 피난처를 찾아 동유럽 평원의 남러시아 초원지대로 쇄도해 들어오는 관문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쇄도해 들어온 각각의 유목민족들은 한 두 세기 또는 몇 세기씩 이 초원지대를 횡행하면서 슬라브족을 습격, 약탈하고 때로는 주민들을 포로로 하여 노예로 팔아넘기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남러시아 초원지대에서 침략적 유목민들이 서로 밀고 밀리는 상황은 862년 러시아가 창건되어 몽고․타타르의 지배 아래로 들어 갈 때인 13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240년 동안 계속된 몽고․타타르의 압제(1240-1480)로 러시아인들이 겪은 민족적 고통과 슬픔은 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고 비참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외침에 의한 러시아 민족의 수난사는 중세를 지나 근대에 이르기까지 폴란드의 크레믈린 침탈,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침공 등으로 여전히 계속되었었다. 러시아인들은 역사의 초기부터 이처럼 가혹한 수난과 단절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민족의 생존을 위협받으면서 개인보다는 우선적으로 공동운명체적 집단주의 생활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공동체 내에서는 자신들을 보호해 줄 일사불란한 중앙집권적 지도력(절대권력)을 만장일치로 갈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공동체 우두머리에게 의지하는 종교적 성향까지를 보이게 되었다. 동시에 이와 같이 지속적으로 견디기 힘든 민족적 시련을 겪으면서 러시아인들은 접근하는 외부세력에 대해 태생적으로 항구적인 거부감과 더불어 강렬한 대외혐오증적 애국심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왜 러시아라는 나라가 국난에 직면하였을 때 강력한 한 지도자를 정점으로 하여 일사불란하게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왜 국제무대에서 유별나게 집단안보나 유엔의 역할을 강조하고 나서는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인들의 의식구조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천 년이 넘게 러시아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오고 있는 정교회(Orthodox Church)이다. 988년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정교회가 러시아 땅에 정식 국교로 전래되어 러시아인들의 마음속에 심어주게 된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적 공동체사상과 함께 세속 황제가 교황권까지 겸한다는 이른바 황제교황주의(Casaropapismus)라는 통치이데올로기이다. 특히 비잔틴 제국의 세속 황제가 교회까지 장악한다는 제정일치적 황제교황주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최고통치권자가 집단주의(공동체)를 바탕으로 중앙집권적 통치권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점차적으로 러시아인들은 나라의 통치자를 비잔틴제국에서처럼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지상에 군림하는 절대적 지배자라고 믿게까지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역사적으로 상호보완적이기는 하지만 교회가 줄곧 국가의 보호를 받아 오면서, 특히 제정 러시아와 소비에트 러시아, 심지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러시아 땅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날 크렘린의 중요한 확대 국무회의에서 최고 통치권자였던 옐친과 푸틴의 우측 옆 첫 번째 자리에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인 알렉세이 2세 총대주교가 앉았고, 총리는 좌측 첫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또한 지난 2008년 5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취임 당시나, 지난 5월 푸틴 대통령 취임 당시에도 총대주교가 맨 앞줄 중앙에 상ㆍ하 양원 의장과 더불어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 보아도 러시아라는 나라에서의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를 그 역사적 의미와 함께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다.
 

      본고는 지금까지 고찰한 바와 같이 러시아인들의 핵심적 의식구조는 기본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인문 지리적 자연환경 및 그들이 역사를 통해 겪은 민족적 수난과 비잔틴 제국의 황제교황주의적 정교회의 수용을 통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광대하고 가혹한 자연환경은 러시아인들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외경심과 인종(忍從)적 순응의 자세를, 동시에 자연창조의 절대자에 대한 순종의 마음을 갖게 하였다. 그리고 240여 년 간의 몽고․타타르족의 압제로 대표되는 이민족의 침략에 따른 민족적 수난은 세속의 강력한 통치지배 권력에 대한 지지와 절대적 복종의 자세를, 나아가 외부세력의 접근에 대해서는 항구적인 대외혐오증적 애국심을 갖게 하였다. 또한 역사 초기 지배자의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수용된 비잔틴 제국의 황제교황주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권의 형성과 피지배자들이 통치권자에게 의지하고 절대적 복종의 자세를 갖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러시아인들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 부딪쳤을 때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대처한다는 공동운명체적 집단주의(collectivism)와 이를 실현시켜 나가기 위한 통치권자의 중앙집권적 절대 권력을 중심으로 한 만장일치제적 일사불란한 집권주의(centralism)를 갈망케 하였고, 따라서 러시아인들의 의식구조에는 이 두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한 대외혐오증적 애국주의(patriotism)가 뿌리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요소들이 러시아 역사상 가장 두드러지게 잘 나타난 시기가 바로 이반 뇌제, 표트르 대제, 스탈린 서기장, 그리고 구소련 붕괴 후 나락으로 떨어진 러시아를 오늘날 국제무대의 강자로 다시 부활시킴으로써 21세기의 짜르 또는 21세기의 표트르 대제를 꿈꾼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시기라고 많은 전문가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정치 문화적 정서 위에 오늘날의 푸틴은 러시아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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