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러시아 철강산업의 특징과 한러 철강 협력의 현주소
러시아 오영일 포스코경영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위원 2013/03/20
1. 러시아 철강산업의 특징
철광석, 석탄, 다양한 소재들이 풍부한 러시아는 철강산업에 있어 뛰어난 경쟁력을 보유한 국가이다. 러시아 제조업 분야 중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거의 유일한 분야가 철강 산업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다. 철광석 매장량은 550억 톤으로 세계 1위이며, 석탄 매장량은 1,600억 톤으로 세계 2위이다. 니켈은 세계 최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며, 확인된 텅스텐 매장량도 25만 톤이나 된다. 대부분의 철강 업체들은 자체 광산을 보유하고 있어 최근과 같은 시장 상황 속에서 더욱 경쟁력을 보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 Evraz, Severstal, NLMK, MMK, Mechel과 같은 상위 5개사가 비교적 고른 시장 점유율로 전체 조강 생산의 75% 가량을 담당하고 있어 적당한 수준의 경쟁 체제도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몇 가지 단점도 있다. 첫째, 러시아 철강사 중에는 세계적 수준의 대형 업체가 없어 국제 철강시장에서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못하다. 최대 생산업인 Evraz사의 조강생산량은 12Mt인데, 이는 한국 POSCO 조강생산량의 36% 수준에 불과한 수준이다. 둘째, 철강 업체들의 지역적 편중 현상이 매우 심하다.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러시아 철강업체들은 대부분 모스크바 주변에 위치해 있다. 구소련 시절 자동차 제조업체, 조선소 들이 러시아 서부 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철광석 및 석탄 산지들이 주로 러시아 서부 지역에 밀집해 있다는 것이 그 주요한 원인이다.
2. 극동 지역 철강산업의 특징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극동 지역에는 대형 철강 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극동 지역의 대표적 철강사 Amur Metal, Petropavlovsk Metallugy는 고로 설비 없이 고철 가공 정도를 주력으로 하고 있는데 러시아 극동 지역의 철강 산업이 미발달한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극동 지역의 철광석과 석탄 생산량이 러시아 서부 지역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극동지역도 절대적 매장량은 적지 않으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개발 및 생산이 부진하다.
두 번째 원인은 철강 소비 산업의 부재이다. 철강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철강 제품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자동차, 전자, 조선 산업 등이 있어야 하는데 러시아 극동 지역에는 이런 후방 산업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조선소는 구소련 시절부터 러시아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되었고, 가전, 자동차 생산 기지가 들어서기에 러시아 극동 지역은 절대 인구가 작고 인구 밀도도 너무 낮다는 약점이 있다.
세 번째 원인으로는 철강 산업에 필요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원료 산지에서 생산한 제품을 외부로 운송할 수 있는 철도, 도로가 부족하다. 또 생산된 제품을(원료이던 가공한 제품이던) 해외로 수출하는 데 필요한 항만 시설도 부족하다.
3. 한국과의 철강 산업 교류
한러 수교가 20년이 훌쩍 넘은 최근 가전, 자동차, 식음료, 호텔, 백화점 등 양국의 어지간한 경제 분야는 어느 정도 교류의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유독 철강 분야만큼은 양국 교류의 뒷줄에서 머물러 있다.
한국과 러시아는 세계 철강 순위 5, 6위에 랭크 될 정도로 양국 모두 철강 강국이다. 하지만 두 나가가 보유한 경쟁력의 원천은 전혀 다르다. 한국은 생산 공정 및 품질 관리를 통한 철저한 효율성이 경쟁력의 원천이지만, 러시아는 철저히 원료를 바탕으로 한 낮은 원가 구조를 경쟁력으로 갖고 있다. 철강 산업의 핵심 원료인 철광석과 석탄(coking coal)을 한국은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러시아 철강사들은 평균 85% 가까운 원료 자급률을 보인다. 때문에 한국 업체가 아무리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 절감을 해도 러시아의 원가 경쟁력은 우리가 넘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이 기술력, 시장 지배력 등에서 절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가전, 자동차 산업 등과는 게임의 룰이 완전히 다른 분야가 바로 철강 산업인 것이다.
물론 경쟁이 아닌 협력의 방향으로 시각을 돌리면 윈-윈(Win-Win) 할 수 있는 분야도 존재한다. 간단히 생각해서 러시아의 높은 원가 경쟁력에 한국의 기술과 효율성을 접목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용 강판이나 스테인레스 냉연 제품 등과 같이 한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있고, 러시아 시장에서 공급이 제대로 안 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국 철강사가 과연 협력을 할 것이냐, 또는 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이다. 양국 철강사들은 공통적으로 자국에서 독보적인 시장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슷한 수준의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늘 우월적 위치에서 시장을 호령하려는 태도가 몸에 베어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양보와 타협을 통한 협력을 도출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풍부한 원료를 보유한 러시아이건만 한국 업체들의 러시아 철광석, 석탄(coking coal) 수입량은 아주 미미하다. 한 마디로 양국 수교 초기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발한 교역이 있는 가전, 자동차, 석유화학, 식음료 분야와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지금부터 단계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은 철강 원료 수입을 점차 확대시키며 러시아 파트너의 특징을 좀 더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쉬움이 크지만 한러 철강협력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그 이후로 잠시 미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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