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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혼돈의 예멘, 이라크전쟁의 재판(再版) 우려

아프리카ㆍ 중동 기타 홍성민 중동경제연구소 소장 2015/05/14

전선(戰線)없는 전쟁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10개국 아랍동맹군이 예멘의 수도 사나(Sana'a)를 공습한 지 47일 만에 극적으로 5월 12일 닷새간의 휴전이 성사됐다. 유엔(UN)은 예멘에서의 무력충돌로 약 750만 명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며 향후 3개월 동안 2억7천400만 달러의 긴급 구호자금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UN의 요청에 따라 예멘에 2억7천4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휴전에 합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사태에 직접 개입하게 된 동기는 예멘의 하디 대통령이 지난해 9월 가택연금 상태에서 벗어나 지난 2월 아덴으로 탈출하여 대통령직 사퇴를 철회하였지만, 상황이 어렵게 되자 다시 아덴을 떠나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한데 기인한다. 사우디아라비아로 거처를 옮긴 하디 대통령은 UN 안보리에 군사개입요청을 하였고, 급기야 3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10개국 아랍동맹군이 예멘의 수도 사나를 공습함으로써 예멘사태는 인접국으로 확대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멘의 현 상황은 혼돈(混沌)이 아니라 신비(神秘)에 가깝다. 대통령은 국외로 피신했지만, 망명정부가 수립된 것도 아니다. 여기에 지난해 9월 수도 사나를 점령한 후티 반군은 지난 2월 6일 의회와 내각을 해산하고 ‘혁명위원회’ 중심의 2년간 과도통치를 선언하고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하디 대통령을 예멘의 정통성으로 인정하고 있다(예멘사태 주요일지는 <표> 참조).

‘테러와의 전쟁’에서 순니파 계열의 알-카에다와 전쟁을 치르던 정부군은 현재 후티 반군세력에 동조하여 연합전선을 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남부의 분리주의자들도 하디 대통령을 외면하고 분리독립을 원하고 있다. 알-카에다의 분파인 IS(이슬람국가) 또한 순니파라는 명분하에 알-카에다와 연합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습에 편승하고 있다. 한마디로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게 현 예멘의 정세다.

예멘은 현재 피아(彼我)의 구분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현 예멘의 사태를 두고 “이슬람의 ‘순니와 시아’간의 종파전쟁이니, 사우디-이란의 대리전쟁”이니 하는 분석이 우세하다. 물론 일리가 있는 분석이기는 하지만 예멘사태의 본질은 우선 종족분쟁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하기에 그 해법은 일단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 찾아야 한다.

사담 후세인만 제거하면 이라크의 민주화가 달성될 것이라던 서구의 해법은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IS와의 힘겨운 투쟁에 휘말리고 있다는 점이 예멘 해법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사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34년 철권통치를 해온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하야하면 예멘의 민주화가 쉽게 달성되리라 보였다. 하지만 살레의 권력기반은 그리 취약하지 않았다. 의회의 다수당인 국민의회당(GPC)은 아직도 살레의 통제하에 있고 군부에서의 영향력도 대단하다고 한다. 여기에 과거에는 적대관계였던 후티 세력이 정권획득이라는 공동 목표하에 현재는 전략적으로 살레의 추종세력들과 연합전선을 펴고 있다. 그 일례로 지난해 9월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로 진격할 때 예멘 정부군은 이를 저지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정부재정의 1/3을 차지하는 연료 보조금(약 20억 달러)을 축소하여 연료값이 치솟자 하디 정권에 반대하는 민심이 동요하였고, 이를 틈타 후티 세력이 반정부 시위에 앞장서게 되었다. 결국, 후티 세력은 지난 2월 예멘정부를 무력화시키고 혁명위원회 중심의 과도정치가 열렸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현 예멘정부의 정통성은 하디 대통령이 갖고 있지만, 해외에 거주하고 있고, 반군으로 불리는 후티 세력이 과거 집권세력의 협조하에 예멘의 수도를 통치하고 있기에 ‘혼돈(混沌)의 예멘’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남부의 분리주의자들도 하디 대통령이 한때 살레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그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가 강대국들의 개입이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으며, ‘이라크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사우디-이란 대리전은 예멘사태를 과소평가

이라크에서의 오판(誤判)이 예멘에서도 재연될 조짐을 보인다. (현재도 그런 분석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과거 이라크 전쟁 시에 이슬람의 종파별 인구 구성을 비교하여 소수의 순니파와 다수의 시아파를 중심으로 권력재편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쿠르드족의 존재를 간과했던 점이 IS를 탄생시켰다.
인구구성으로 보면, 이라크의 경우 전체인구의 약 35%가 순니파, 약65%가 시아파다. 집권세력 순니파가 몰락하고 시아파가 집권할 수 있다던 논리는 빗나가고 순니파를 표방하는 IS가 알-카에다에서 분리되어 지난해 이라크를 유린하여 현재까지도 득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아파 이란의 이라크 개입을 두고 국제사회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걸프국가들, 특히 GCC국가들이 이란에 대항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질 못했다. 미군의 공습까지 이어졌지만, 여전히 IS는 이라크에서 득세하고 있다.

예멘의 경우를 보자. 이라크와는 반대로 예멘은 인구의 약 35%가 시아파, 약 65%가 순니파이다. 과거 예멘의 집권세력은 시아파 계열이다. 특히 현재 반군인 후티 세력은 시아파이다. 이를 두고 이란이 개입하는 사우디-이란의 대리전을 쉽게 전망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예멘에서는 시아파 계열의 새로운 무장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남긴다.

이러한 논리는 예멘사태를 이슬람의 종파(宗派), 즉 순니파와 시아파의 대결, 더 나아가 사우디-이란간 대리전으로 몰고 간다. 그러나 현 예멘사태는 2001년 9/11 미 테러사태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과 그로 인한 2003년 이라크전쟁의 종지부라는 측면에서 고찰돼야 한다. 다시 말하면 중동질서의 완결판이 예멘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세계 교역물량의 20%가 아덴만을 통과하며, 한국의 전체 물동량 가운데 약 30% 정도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이 점이 홍해 안보를 일깨워주는 중요한 지표다. 미국이 중동에서 치른 값비싼 희생의 대가를 예멘이 치러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국제정세는 크게 변화했다. 중국의 부상으로 이 지역에서 G2의 대결이 침묵 속에 꿈틀대고 있다. 물론 시작은 예멘의 내분으로 시작됐지만, 사우디-이란 간 대리전을 빌어 강대국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에 사우디-이란 간 대리전은 예멘사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멘분쟁은 이슬람의 종파문제가 아니라 부족 간 이권 문제가 핵심

예멘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종족(種族), 즉 부족 중심의 권력형성이다. 그렇기에 예멘의 정체성은 부족주의에서 찾아야 한다. 예멘에서 부족(部族)은 생존의 근원이다. 이러한 구조는 5000년을 이어온 예멘의 전통이고 자존심이다. 20세기 문명화한 국가들이 탄생될 때까지도 철저히 베일에 감춰져 있다가 1990년 남북예멘의 통일과 함께 홀연히 침묵을 깨고 국제사회에 등장한 나라가 예멘이다. 이런 이유로 예멘은 종종 ‘신비의 나라(mysterious country)'로 불린다. 마치 현세에서 중세시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
예멘은 크게 하미르, 무드하즈, 킨다, 하쉬드, 바킬 등 5개 부족이 지배하는 사회다. 특히 하쉬드와 바킬 양대 부족(部族)은 수도 사나의 북부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부족의 지도자들은 여당이나 야당인 이슬라당에 소속하여 항상 부족의 이익을 선택한다. 예멘에서의 정당은 부족중심으로 잘 짜여진 벌집에 비유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내각구성도 부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부족의 대표자가 중요 보직을 맡아서 자신의 부족에 대한 경제적 이권을 수호한다.

예멘에서의 부족에 대한 소속은 생존과 직결되기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이유로 각각의 부족은 사병(私兵)을 유지하며, 관할통제권도 갖고 자신들의 경제적 이권을 지킨다. 중앙정부의 군대가 부족의 민병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 예멘정부가 후티 세력과의 전쟁에서 정부군이 부족에게 민병대를 요청했고, 2010년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부족 민병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바로 그 이유다.

예멘의 권력구조 또한 부족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국가의 자원은 정권의 소유이고 공적 기관들은 부족에게 주어진다. 부족장과 그 후계자가 고위권력을 차지하며, 일반 부족민들은 행정기구를 차지한다. 18개 주지사들은 각기 부족의 대표자들로 보면 되고 내각의 장관들도 같은 형태로 중앙정부에 의해서 할당된다.

각각의 부족들은 자신들의 영토에서 국가와 같은 통치력을 가지며, 중앙정부는 이들의 통치에 개입하지 않는다. 중앙정부의 통치력은 도시와 그 인근 지역에 한정되며 부족장들은 지방과 농촌 지역을 통제한다. 중앙정부는 부족 간의 전쟁에는 개입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게 일종의 불문율이다. 도시인구가 전체인구의 약 35%인 점을 고려하면 예멘에서 부족의 영향력은 쉽게 예측 가능하다.

예멘의 양대 부족 중 하나인 하쉬드 부족은 1990년 통일이후 여당인 국민의회당(GPC)를 지지해왔고, 바킬족은 예멘공산당을 지지해왔다. 현재 주도권을 쥐고 있는 후티 반군의 세력은 후티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이 운동은 2006년 사다주(州)에서 시작되어 인근 부족들의 지지를 얻게 되어 아므란, 알자우프, 핫자와 수도인 사나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후티 운동은 바킬족의 사프얀 부족과 하쉬드족의 두 무함마드 부족간의 100년 이상 된 분쟁에 기인한 것이다.

시아파인 후티 운동을 제압하기 위해 예멘 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로 협력해왔지만, 살레 대통령의 퇴진 이후, 하쉬드족이 변심하여 정부군과 대치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이 과정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정부군을 지원하게 되었고, 이란은 시아파인 후티를 지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사우디-이란 대리전이라는 도식이 성립하게 된 것 같다.

예멘에는 “예멘을 통치하는 것은 사자의 등을 타는 것과 같다; 한번 올라타면 내릴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예멘을 통치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부족주의에 기반을 둔 예멘의 권력구조는 철저히 부족의 경제적 이권, 특히 자원(資源)의 관리와 관련돼있다. 따라서 부족의 이권을 불평없이 배분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예멘의 평화는 보장될 수 없다. 그렇기에 예멘사태를 보는 강대국들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쉽게 개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칫하면 이라크에서 범한 과오를 초래할 수 있기에 이란에서의 핵협상 타결을 지켜보면서 강대국들은 개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예멘공습도 미국과의 조율을 통해서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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