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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알제리 정치위기 현황 및 전망

알제리 Vladmir Hlasny Ewha Womans University Associate Professor 2019/07/31

시위와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사임
지난 2019년 2월 80대에 접어든 압델 부테플리카(Abdelaziz Bouteflika) 대통령이 재선 출마를 발표하자, 장기간 누적된 알제리 국민들의 불만이 마침내 폭발했다. 알제리 국민들은 변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진정성 없는 정치권의 대응은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경우 조기에 퇴임할 것이라 공약했지만 시위가 더욱 거세지자 결국 출마 선언을 철회하고 즉시 하야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막후에서는 부테플리카 세력 내 다른 측근으로 권력을 이전하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 계속된 시위로 인해 2019년 4월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결국 사임했으며 정재계에 포진해 있던 대통령 측근들도 상당수 축출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거물급 억만장자 다수도 부패 혐의로 구속되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에 대한 알제리 국민들의 반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과도 정부의 임기가 선거예정일인 2019년 7월 4일임에도 불구하고 압델카데르 벤살라(Abdelkader Bensalah) 임시 대통령과 누레딘 베두이(Noureddine Bedoui) 총리에 대한 하야 요구가 거세다. 시위대는 “같은 패거리 통치 하에 선거는 없다(No elections under gangs’ rule)”는 구호를 주창하고 있다.

 

알제리 정치 위기 원인
사회 여러 측면에서 정치 및 경제 병폐가 나타남에 따라 시위대의 불만은 깊어만 갔다. 아랍 바로미터(Arab Barometer)와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s)에 따르면, 알제리인 다수가 자신의 삶에 자유로운 선택권이 없다고 느끼며 연줄 없이는 취직할 수 없고 누군가가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알제리 정부가 모든 국민의 경제적 자활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Lagravinese 등, 2015). 알제리 시위는 청년 및 소외 근로자 계층의 정치적 자유 및 경제적 기회 부재와 함께 80대에 접어드는 정계 고위층이 일반 시민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현 알제리 위기는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그 발단은 지난 10년 동안 있었던 정치 및 경제적 문제 및 이들 문제를 악화시킨 정부의 역할 부재이다.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반 꾸준한 경제성장을 구가했던 알제리는 유가 급락과 정부의 대응 실패로 인해 2015년부터 경제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농산품과 제조상품 수출이 증가하긴 했지만 석유 및 가스 수익 저하로 인해 발생한 격차를 메우기에는 역부족 이였다. 무역 적자와 정부 부채가 확대됨에 따라 인프라 투자 및 빈곤 완화 정책에 사용될 자원이 부족해졌다. 공공분야 및 에너지/화학 산업 규모가 큰 알제리 경제의 실업률은 12%로 치솟았으며, 특히 청년과 여성 실업률은 각각 30%, 40%로 치솟았다.

 

더구나 2000년대부터 이루어진 경제발전의 성과가 국민 모두에게 고르게 분배되지 못했다. 빈곤층은 식품 가격 증가로 타격을 입었으며 청년층이나 여성 등 취약 인구집단의 높은 실업률은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공공부문 및 기업부문 내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는 비정규직 또는 일용직 등으로 대체되었다. 임금 또한 낮아졌다(Benhabib 및 Adair, 2017). 보건 지표는 개선되긴 했지만 전체적인 보건 격차는 확대되었다. 집안의 재력 및 도농격차가 보건 자원 분배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고 말았다(Hlasny, 2017).

 

부테플리카 정부는 경제다각화를 통한 채굴산업 의존도 저하 및 안전망 구축을 이루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오일쇼크에 노출되었다. 고용률 제고, 저렴한 주택 건설 및 식품가격상승에 따른 가계 피해 방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너무나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뒤늦게 이루어졌다.

 

실제로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건강문제를 겪기 시작한 2005년부터 알제리를 통치한 것은 대통령의 측근 및 대통령의 형제인 사이드 부테플리카(Said Bouteflika)였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위암 진단을 받았으며 2013년에는 뇌졸중으로 한 번에 몇 개월씩 프랑스에서 입원하곤 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뇌졸중으로 인해 언어 능력을 상실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대통령은 대중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며, 심지어는 정부 내각과의 소통도 제한적으로 서면으로만 진행되었다.

 

따라서 올해 시위를 촉발한 계기인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5선 도전을 위와 같은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2014년부터 휠체어에 의지해 살았으며 대중연설을 하지 않았다. 형제인 사이드 부테플리카가 작성한 것으로 추측되는 서면 선언문을 통해 국정을 운영했으며 재선 당시 선거 유세 또한 직접 진행하지 않았다. 1999년부터 집권한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3선 및 4선(각각 2009년, 2014년) 선거 이전 국회를 통해 관련 헌법 개정을 두 차례 강행하며 임기를 연장했다. 1999년, 2004년 및 2009년의 선거 승리는 모두 선거부정 및 야당의 보이콧으로 물들어 있었다.

 

질병으로 인해 정상생활이 불가능하여 대중과의 교류도 하지 못하며 대중의 지지율 또한 의심스러운 수준인 정치인이 어떻게 계속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답은 부테플리카 권력의 고착화 및 군부의 지속적인 지원에 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 및 그 측근은 집권 직후부터 재계 거대기업과 청탁 및 편익을 주고받았을 뿐만 아니라 군부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미디어를 통제하며 권력 공고화 작업을 시작했다. 부테플리카 정부는 정권과 연계된 기업에게 국가 사업권을 주었고, 해당 기업은 국가사업을 통해 얻은 인프라 이용료의 잉여분 및 고용 기회를 사용하여 유권자를 달래고 공무원에게 특혜를 제공했다. 회전문 인사와 네포티즘(nepotism)이 만연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미디어와 거리를 두었다. 미디어의 접근을 거절하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의 생중계 토론도 금지했다. 또한 주요 미디어 매체의 소유권을 자신의 측근에게 주고, 불만을 가진 매체의 경우 (국가기관 또는 연계 기업의) 광고에 자금을 제공하라고 지시하며 미디어의 자체 검열을 강화했다. 2010년에는 자기 자신을 알제리 국영 텔레비전 방송사의 편집국장으로 임명하기에 이르렀다. 부테플리카 정부의 안보기관은 1992년부터 계속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11년에 부분적으로 해제된 것을 제외하고 지속 유지된 이 비상사태로 인해 권력, 언론의 자유 및 시민의 권리 간 균형이 깨졌다. 2019년 2월 시위가 서서히 번지기 시작한 이면에는 미디어 보도 및 공공 집회에 대한 금지가 있었다.

 

알제리 정국 전망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지속가능한 발전 관련 알제리의 앞날은 어떨까? 시민 사회가 성공적으로 중립적인 지도자를 세우고 선의의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 조심스레 낙관할 수 있다. 그러나 그저 바람만으로 이를 실현할 수는 없을 것이며, 난관이 도사리고 있거나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부테플리카 전차는 경로를 이탈했으나 그 바퀴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물론 공무원과 친정부 고위급 재계 인사 다수가 체포되었고 부테플리카 정부의 관료주의와 정책을 해체하기 위한 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수의 공인이 변화가 필요하다는 대중의 구호에 동조하고 있고,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전임 정권에서 비교적 지위가 높지 않았던 인사, 군부, 민간분야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었던 네트워크와 기관 보존에 필요한 인력을 구하기 위한 협상을 막후에서 전개하고 있다. 마지못해 부테플리카 대통령을 저버리고 사임을 요구한 군부가 민주주의에 반하고 현상 유지를 원하는 입장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확실한 체제 변화의 성공 여부는 단언할 수 없다. 오늘날 알제리 정치 환경을 살펴보면 새로 들어선 정권이 급진적인 헌법 제안으로 국민을 분열하고 국가를 내전 발발 직전으로 몰고 간 2013년 이집트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군부가 헌정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새로이 구축한 체제 또한 이전 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혁명을 통해 끌어내린 이전 정부보다 더욱 독재적이라는 것뿐이었다. 수감된 자들은 사면되고 혁명의 승리자들이 처형되었다.

 

체제 변화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과거의 사례는 이집트뿐만이 아니다. 리비아에서는 국가원수였던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Gaddafi) 축출 이후 이어진 수 년 간의 권력 다툼과 사회적 혼란 끝에, 현재 칼리파 하프타르(Khalifa Haftar) 총사령관이 스스로를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 UN이 지지하는 국민통합정부(Government of National Accord)의 지배력을 뺏고 있다. 예멘의 경우, 2011년에 몰아낸 대통령의 자리에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대통령의 대리인이 부정 단독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다. 이러한 ‘실패한’ 혁명은 (시리아나 레바논의 경우처럼 외국 군대의 개입으로 인해 실패한 것이나 바레인처럼 잔인한 정부군에 의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실패한 것이다. 분열된 야권과 공공의 무질서가 기존 세력의 집권을 막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다른 아랍의 봄 혁명 사례를 비유로 드는 것이 적절하다. 실제로 알제리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위기는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고 정치 구조 재정립이 미흡했으며, 유권자와 각종 기관이 뇌물을 받고 석유 수입을 사용한 공약과 낭비를 묵인했던 아랍의 봄 이후를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알제리 국경 밖을 살펴보면 현 위기가 알제리에 국한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웃국가에서도 지도층에 대한 도전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2월 이후 수단에서 정치적 시위 발발 기미가 보이고 있고, 리비아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진행 중이다. 이집트에서는 잔혹한 탄압을 통해 반체제 인사를 저지하고 있으나, 시민 사회가 결국 봉기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요소들이 2011년 이후 민주적 및 경제적 발전 부재로 인해 아랍 지역에 봉기의 새로운 물결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신호탄이다. 실제로 많은 아랍 국가들이 같은 병폐를 앓고 있으며 변화의 시대가 도래 했다는 신호를 보여주고 있다. 아랍 국가의 경제는 자원 채굴에 따른 수익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으며, 과도한 부채와 사회경제적 불균형, 취약한 안전망, 노동시장 문제 및 기업의 경쟁력 문제 등을 지니고 있다. 아랍 국가의 정치권에서는 국정을 운영하는 이들의 재계 및 군사 관련 이득을 위한 강한 파벌을 형성하고, 약하고 나이 든, 국정 운영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랍 지역의 시민 사회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알제리 시위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자국 내에서도 정치적 변화를 이룰 수 있을지 그 전망을 점쳐 보기 위함이다. 알제리는 아랍권역, 나아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국가이며 인구도 손에 꼽힌다. 아랍 지역에서 알제리 인구는 이집트 다음으로 가장 많다. 알제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랍 전체의 경제와 정치에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다. 결국은 봄이 오는 것처럼, 알제리가 성공할 경우 그 성공담은 아랍 지역 전체로 퍼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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