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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포스트 나자르바예프 시대 카자흐스탄 시민사회의 동요

카자흐스탄 구세진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2023/10/19

카자흐스탄은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위치하며 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영토를 갖고 있고, 인구는 약 1,800만 명인 신생 국가이다. 러시아, 중국,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육상 경계를 맞대고 있으며, 몽골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40km가량 떨어져 있다. 수도는 아스타나(Astana)이며 카자흐스탄 텡게(tenge, KZT)를 고유 화폐로 사용한다. 카자흐어가 국어, 러시아어가 공용어이다. 민족 구성으로는 카자흐인이 64%, 러시아인이 23%, 기타 우즈벡, 우크라이나, 위구르, 타타르, 고려인(10만 명)이 소수민족을 구성하고 있다. 카자흐 부족(Horde)들은 전통적으로 유목 생활을 해 왔다. 18세기 초부터 제정 러시아가 카자흐 부족들에 대한 지배를 확장해 나가면서, 러시아인들의 이주도 급증했다.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이후 카자흐스탄 사회주의 자치 공화국(Kazakh Autonomous Socialist Soviet Republic)이 세워져, 키르기즈스탄과 비로소 구별된 지역/민족으로 인식되었다1).  

현재의 카자흐스탄 국가는 1990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세워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2022년 기준 1인당 GDP가 1만 1,244 달러(한화 약 1,507만 원)인 상위 중소득 국가로, 멕시코·중국· 말레이시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카자흐스탄은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 2000년 1,229 달러(한화 약 164만 원)에서 2013년 1만 3,891달러(한화 약 1,862만 원)로 1인당 GDP가 10배가 넘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2007년까지 평균 10%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은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중국의 성장부진, 2014~2015년 국제유가 하락 등이 겹치면서 상당한 부침을 겪게 된다. 원유와 가스 관련 산업이 국가 전체 GDP의 30%, 총 수출액의 3분의 2를 차지한다2)

국내 정치 측면에서는 긴 식민지 역사와 소비에트 경험에서 비롯된 관료주의적인 독재 체제와 약한 시민사회가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1989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 1서기로 임명되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yev)는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끌었고, 이후 2019년 3월 19일 예고없이 발표된 사임까지 대통령으로서 최고 권력자 지위를 유지했다. 나자르바예프가 지목한 후계자이자 그의 사임발표 당시 상원의장이었던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Kassym-Jomart Tokayev)가 그 해 6월 실시된 조기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대통령의 직위를 물려받았다. 3년 뒤, 토카예프 대통령은 2022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7년 단임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그 해 11월 실시된 조기대선에서 승리했다.  프리덤하우스(Freedomhouse)나 이코노미스트 민주주의지수(The Economist Democracy Index)와 같은 글로벌 민주주의 지표들은 포스트 나자르바예프 시기 카자흐스탄을 그 전과 별로 다르지 않은 독재국가(authoritarian regime)로 분류하고 있다.    

2010년대 초까지 카자흐스탄 시민사회는 ‘비활성화된 상태’이며 일반 시민들, 그 중에서도 청년세대는 더욱 ‘탈정치적’이고 ‘수동적’이라고 보고되어 왔다3). 그러나 최근 노동자를 포함한 시민들의 불만이 조직적/비조직적 시위들로 표출되고 있다.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축적된 구조적 원인으로는 2010년대 경제성장의 부진, 2014~2016년 유가 하락과 카자흐스탄 현지화인 텡게의 평가절하가 불러온 인플레이션 등, 경제적 요인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여기에, 조용하고 수동적이었던 시민사회가 동요하는 데에 강력한 촉매제가 된 사건이 2019년 대선과 정권교체였다. 이 글에서는 2010년대 이후 등장하여 ‘3세대 정치적 반대(김태연 2023)4)’로 불리는 대중의 항의시위와 시민사회의 조직화 양상을 노동, 반중(反中), 복지, 청년의 키워드를 통해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카자흐스탄 대규모 시위의 역사
가장 최근 발생한 대중의 폭발적 저항은 2022년 1월 초 카스피해 부근 원유 산지인 망기스타우(Mangystau) 주에 위치한 자나오젠 시(Zhanaozen)에서 발생한 LPG 가격 인상 항의 시위와 그 확산이다. 10년 전 리터당 30~35텡게(한화 약 85~98원)였던 LPG가격이 계속 올라, 2021년 12월 31일에는 100텡게(한화 약 280원)에 이르렀다. 2019~ 2021년 보조금폐지와 LPG 전자상거래화 정책이 진행되다가, 전자상거래화가 2022년 1월 1일자로 완료되자 LPG 가격이 단 하루만에 20% 상승해 120텡게(한화 약 337원)가 되었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서부 카자흐스탄 지역 차량의 70~90%가 LPG를 연료로 하고 있다5). 망기스타우 주를 포함한 카자흐스탄 서부에는 이 나라 경제를 이끄는 원유와 가스 산지가 집중되어 있지만, 대도시인 알마티나 아스타나 등에 비해 도로 사정과 기타 공공 시설 등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식료품은 장거리 운송을 거쳐 유통되기에 대도시에 비해 훨씬 비싸다. 1월 2일 자나오젠시 중심가를 점령하고 다음 날까지 밤샘 시위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자동차 운전자들뿐 아니라 연료 가격의 상승이 가져올 식료품 가격 인상을 우려하는 시민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수백 명으로 시작된 시위대는 곧 수천 명으로 불어났고, 악타우(Aktau)와 알마티(Almaty)로 시위가 급속히 번지면서 집권 여당 건물에 대한 방화 등 폭력적 양상으로 변했다. 1월 4일 정부는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가격인 50텡게(한화 약 140원) 이하, 또는 시장가격의 반 이하로 연료 가격을 인하할 것을 약속하지만, 결국 5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폭력시위를 선동한 ‘테러리스트’를 사살할 것을 경찰에 명령했다. 1월 6일 토카예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 (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에 군대 파견을 요청하여 폭력적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2022년의 ‘피의 1월’ 사태는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서부 지역 대중들의 항의시위는 ‘자나오젠 학살’로 알려진 2011년의 노동자 파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금인상과 체불된 위험수당 지급 등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고, 이 지역 다른 에너지 회사 노동자들의 대규모 연대파업으로 이어졌다. 이에 국영 에너지회사인 카즈무나이가스(KazMunaiGaz)는 1,000명 가까운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노동자들과 경찰 간의 수 개월의 대치는 그 해 12월 16일 경찰과의 충돌로 최소 16명 사망과 100여 명의 부상으로 끝난다. 그 후 수년간 잠잠하던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는 2010년대 후반부터 잦아졌다. 2017년 카자흐스탄 중부에 위치한 카라간다(Karaganda) 지역의 석탄광산에서는 광부 수백 명이 세계최대 철강/광산업체인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 측에 임금인상과 노동환경개선을 요구하며 광구 안에서 나오기를 거부하는 파업을 벌였고, 이어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광부들의 파업이 이어졌다. 학살 사태 이후 표면적으로는 잠잠했던 자나오젠에서도 2019년 정부에 실업 대책과 질 높은 일자리를 요구하는 시위가, 2021년 여름에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노동조건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이 발생했다. 

자나오젠 학살의 기억에 더하여 경제적 번영에서 소외되었다는 박탈감은 카자흐스탄 서부 주민들 사이에서 정부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대선에서 8명의 후보 중 유일하게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언론인 출신의 아미르잔 코사노프(Amirzhan Kosanov)는 - 투표 당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 나간 각종 선거 부정 목격담 및 그 자신의 터무니없이 부족한 선거운동 자원에도 불구하고 - 전체 표의 16.2%을 얻었는데, 특히 원유, 가스, 석탄 산업이 집중된 서부 지역인 망기스타우 주(32.73%), 아티라우 주(22.69%), 서카자흐스탄 주(20.85%)에서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피의 1월’ 사태 이후 그 해 6월, △행정부 권한 일부를 의회로 이행 △대통령 7년 단임제로의 개헌 △나자르바예프 사임 이후에도 유지되었던 여러 특권 제거를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안 찬반 국민투표가 실시되는데, 이 때도 이 패턴이 반복된다. 헌법개정안에 대한 총반대표가 18.7%였는데, 망기스타우 주(26. 3%), 악토베 주(24.7%), 서카자흐스탄 주(24.2%), 아티라우 주(23.3%)에 더해, 카자흐스탄의 구 수도이며 경제중심지이자 1월 유혈사태의 중심지였던 알마티 시(27.5%)에서 다른 지역보다 반대표 비율이 두드러지게 높았다6).

2014년 2월 카자흐스탄 중앙은행(National Bank of Kazkahstan)이 자국 통화인 텡게를 19% 평가절하하자, 알마티에서는 수 차례의 항의시위(‘검은 화요일 시위’)가 발발했다. 에너지 관련 산업 기업가들에게는 득이 되는 반면 대부분의 개인들은 큰 피해를 보게 된 정부 조처였다. 시위 군중 수는 50~20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때까지 카자흐스탄 사회에서는 이 정도 규모도 상당한 것이었다7). 2009년 18% 평가절하이후 다시는 이런 조처가 없을 것이라 정부가 공언해 왔기에 중앙은행과 정부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텡게가치의 하락은 수입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생필품 가격이 급격히 인상되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고, 그럼에도 오르지 않는 임금에 대한 불만이 사회에 번졌다.     

한편, 중국으로부터 직접투자 등 자본이 급격히 유입되고 그에 따라 카자흐스탄 내 중국 출신 사업가와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민족주의적 반중 정서가 확산되어 왔다. 2016년에는 외국인에게 25년간 토지 대여를 허가하는 토지개혁 법안을 둘러싸고 아티라우(Atyrau), 악토베(Aktobe), 세메이(Semey) 등지에서 시위가 터져 나왔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임금 및 기타 대우에 있어서 차별받는 것에 대한 반발이자,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반감이었다. 인텔리겐차 그룹들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앞으로 공개 서신을 보내, 토지 대여가 결국 외국에 토지를 매매하는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결국, 이 정책은 폐기되었고, 국가경제부 장관과 농업부 장관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러나 2019년 반중 시위가 다시 여러 도시에서 물결처럼 일어나는데, 시위대는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뺏고, 중국기업들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땅을 사들인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 중국의 팽창에 대한 공포에 불을 지른 것은 신장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무슬림 위구르인과 카작인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정부의 탄압이었다. 약 150만 명의 카 작인들이 신장에 살고 있고, 카자흐스탄 동부지역에는 이들의 가족, 친척들이 많이 거주한다. 언론이 극도로 통제된 상황에서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신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탄압 사례들이 활발히 공유되었다.   

2019년 2월 초 아스타나시에서는 한 가정에서 한밤 중 화재가 발생해 0세에서 13세 사이 5명의 어린 자매들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영하 30도를 밑도는 날씨에 제대로 된 안전한 난방시설을 갖추지 못한 낡은 주택에 어린 아이들만 두고 부모가 모두 야간 근무를 나간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전국을 애도와 충격으로 들끓게 한 이 사건을  계기로, 각지에서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다자녀 가구 복지 확대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어머니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적정한 가격에 안전한 주거 공간을 정부가 공급할 것을 요구하며, 어린 아이들을 두고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현실을 규탄하는 시위였다8). 대부분 수십 명 수준에 불과한 규모로 관련 정부 부처를 항의 방문하는 평화로운 시위였으나, 가족 및 아동의 가치가 매우 중요한 이 나라에서 그 사회적 파장은 컸다. 

카자흐스탄 정부의 대응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그동안 카자흐스탄 정부가 시민들의 항의시위에 대해 대체로 온건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는 점이다.  2011년 카자흐스탄의 인권문제에 국제적 관심을 쏠리게 했던 자나오젠 학살이나 2022년의 ‘피의 1월’과 같은 공권력의 야만적 진압과 유혈사태는 상당히 예외적인 것으로, 카자흐스탄 정부는 집단행동에 대해 대체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해 왔다. 예를 들면, 양대 대도시인 아스타나시와 알마티시 정부(Akhim)는 각종 ‘민원’을 시정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로 접수받고, 민원 내용과 관련된 부처에서 어떤 식으로든 민원에 반응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정부 각 부처 별로, 월 2회 부처 책임자급 공무원이 시민들의 방문을 받고 접견하는 제도도 마련되어 있다. 실업, 복지, 부패, 경제 등 구체적인 사회적 사안들에 대해 시민들이 정부의 정책과 집행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투입) 이를 정책 결정과정에서 반영하여 정책을 산출하는 피드백 과정이 아직 형식적인 수준이지만 구축되고 있는 중이다9). 2019년 자나오젠시에서 일어난 실업대책 요구 시위에서도, 지방정부가 취업박람회를 주최하는 등 시민들의 불만에 응답했다. 그 해 반중 시위들에 대해서도 각 지방정부의 대표들이 시위대와 대화하면서 달래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들의 시위’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당시 재임 중이던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소득증대와 산업 다변화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내각을 해임하면서, 정부 관료들이 시민들의 문제와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부 정책을 제대로 설명하라고 질책한 바 있다10). 이어 4월에는 다자녀 가족를 위한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건설 계획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체제’에 대한 도전은 용납되지 않는다. 90년대 사유화 과정에서 급격히 부를 축적한 올리가르히(oligarch) 중 일부와 권력 최측근에서 밀려난 정치 엘리트들이 연합해 2001년 카자흐스탄의 민주적 선택(DVK, Democratic Choice of Kazakhstan)이라는 사회운동그룹을 발기하면서, 독립이래 처음으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민주화를 주창하는 정치 조직이 탄생했다. 이들은 정당을 조직하여 선거에서 의석을 획득하려 했으나, 관련자들 대부분이 부패 등의 혐의로 숙청되면서 와해되었다. 그러다 2017년, DVK 리더였다가 현재 해외 망명 중인 무흐타르 아블랴조프(Mukhtar Ablyazov)와 그의 지지자들이 모여 DVK 운동의 부활을 선언하였다. 2018년, 아스타나 법원은 DVK가 국가를 전복하려는 극단주의 세력이라고 규정했고, DVK는 카자흐스탄 영토 내에서의 모든 활동이 금지되었다. 여기에는 소셜미디어, 인스턴트 메시지, 비디오 공유 사이트를 통한 활동이 모두 포함된다. DVK에 동조하는 활동도 전면 금지되었다11). 2019년 반중시위 물결에서도, DVK가 개입하여 조직한 것이 의심되는 9월 21일자 시위에 대해서 만큼은 예외적으로 경찰이 여러 도시에서 약 100명을 체포하면서 진압한 바 있다12).     

카자흐스탄 시민사회의 성장
시민들의 시위가 전례없는 대규모 폭동으로 발전했던 ‘피의 1월’을 계기로, 나자르바예프가 사임 이후에도 유지하고 있던 특권들 - 집권당 의장, 국가안보회의(Security Council) 의장, 엘바시(‘민족의 지도자’) 호칭 등 - 이 폐지되었다. 그 이외에 나자르바예프를 향한 직접적인 공격은 관찰되지 않는다. 그러나, 맏딸인 다리가(Dariga Nazarbayeva)가 정치 영역에서 밀려났고, 대규모의 국부를 관리하며 부를 쌓은 다른 딸과 사위들도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국가정보원을 장악하고 있던 나자르바예프의 조카이자 그의 실질적인 정치적 후계자로 여겨졌던 사맛 아비쉬(Samat Abish)는 ‘피의 1월’ 사태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나자르바예프의 세력에 ‘반란’의 책임을 묻는 모양새이다. 동시에 나자르바예프의 카리스마적 존재감은 대중들 사이에서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다. 나자르바예프 시대와 마찬가지로, 포스트 나자르바예프 시대의 카자흐스탄에는 집권세력에 대항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미성숙한 상태로 남아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시민사회는 더이상 수동적이거나 비활성화된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 변화는 2022년의 사태 이전 에 이미 시작되었다. 2019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사임발표 바로 다음 날 토카예프 대통령의 주도 하에 수도인 아스타나(Astana)를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인 누르술탄 (Nursultan)으로 개명한다는 결정이 발표되자13), 대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산발적으로 공원과 거리에 소규모로 모여 개명 반대 시위를 벌였다. 다른 대부분의 시위들이 그러하듯 시위대는 잠시 반대구호를 외치다 순식간에 경찰차에 실려 해산되었다. 조기 대선이 발표된 후인 4월 28일, 알마 티에서 열린 마라톤 행사가 진행되던 날 선수들이 지나가는 대로변에는 ‘당신은 진실을 피해갈 수 없다 #ForFree Elections, #IhaveaChoice’라고 적힌 러시아어 현수막이 걸렸다. 이 일로 젊은 두 활동가가 불법시위 죄목으로 체포되어 15일간 구금되었다. 또 다른 대로변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The source of state power is people)’라는 헌법 조항(Article 3-1)이 현수막으로 걸렸고, 이 일을 한 활동가들 역시 경찰에 구금되었다. 공휴일이 몰려 있는 5월 초, 누르술탄과 알마티에서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14). 수십~수백 명이 모인 시위대는 시위를 시작한 후 곧 모두 강제 해산되었고,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들의 접근은 차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투표일 전후로 아스타나와 알마티 시내에서는 수백에서 수천 명이 참여한 전례 없는 규모의 시위가 잇따랐다. 시민들은 토카예프 대통령이 공정하고 투명한 대선을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목격된 선거 부정에 분노를 표출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출마하지 않는 최초의 대선이었던 2019년 이전까지, 이 같은 가두시위는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매우 생경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때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던 이들은 주로 나자르바예프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층이었다. 30세 미만 인구가 인구의 50%를 차지하는 이 나라에서, 이들은 나자르바예프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으며, 선거란 무엇인지, 민주주의적 정권 교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할 기회를 처음 얻었다. 대도시에 거주하며 높은 수준의 학력을 지닌 청년들이 반정부 시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은, 앞으로 카자흐스탄 시민사회의 조직화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의 ‘피의 1월’ 사태가 정부 주장대로 해외 테러리스트 조직을 동원한 일부 정치 엘리트들의 쿠데타인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중들 사이에 지난 수 년간 축적된 사회경제적 불만, 제한된 정치적 참여 기회에 대한 불만에 LPG 가격인상이 불을 지른 것은 분명하다. 무자비한 진압과 함께 정부가 발표한 정치개혁 및 사회정의 실현에 대한 약속들은 2023년 3월 총선에서 정당간 경쟁을 확대하고 봉쇄조항 (electoral threshold)를 완화하는 조치 등을 통해 약간 실현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미하다. ‘피의 1월’ 사태의 진상규명 문제에 있어서도 정부는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나자르바예프의 혈족들이 표면적으로 숙청되고는 있으나, 경제 분야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나자르바예프의 사람들은 아직도 대부분 건재하고, 토카예프에겐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카자흐스탄의 민주화는 아직 이른 이야기이지만, 현 카자흐스탄 정부가 직면한 국내정치적 도전은 정치적 자유화의 확대를 향하고 있다. 


* 각주
1) 전통적으로 카자흐스탄의 시민사회는 유목민들의 부족 집단(Horde, or Clan) 위주로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부족은 매우 비공식적인 집단이며, 실체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2) Beazley, I., Downes, R., & Nicol, S. “Budgeting in Kazakhstan: A roadmap for continued budgetary governance reform.” OECD Journal on Budgeting, 18(3), 9-80. (https://www.oecd.org/gov/budgeting/Budgeting-in-Kazakhstan-ENG.pdf, 2019.
3) Azizi, A. From Social Media to Social Change: Online Platforms’ Impact on Kazakhstan’s Feminist and Civil Activisms. In Anja Mihr, Paolo Sorbello, and Brigitte Weiffen (Eds.), Securitization and Democracy in Eurasia: Transformation and Development in the OSCE Region (pp. 217-228). 2023. Springer Nature;  Junisbai, B. and Junisbai, A. Are Youth Different? The Nazarbayev Generation and Public Opinion. In Marlene Laruelle (Eds.), The Nazarbayev Generation: Youth in Kazakhstan. Rowman & Littlefield. 2019.
4) 김태연. “카자흐스탄 권위주의 체제에서의 정치적 반대와 정부의 대응.” 동서연구, 35(2), 85-124, 2023. 
5) Almaz Kumenov and Joanna Lillis. “Kazakhstan explainer: Why did fuel prices spike, bringing protesters out onto the streets?” https://eurasianet.org/kazakhstan-explainer-why-did-fuel-prices-spike-bringing-protesters-out-onto-the-streets, 2022.1.4
6) The Central Election Commission of Kazakhstan. "Information on the results of the republican referendum." (www.election.gov.kz) https://www.election.gov.kz/eng/news/releases/index.php?ID=7157, 2022.6.8
7) Birgit Brauer. “The Cost of Black Tuesday for Kazakhstan.” The Central Asia-Caucasus Analyst.  https://www.cacianalyst.org/publications/analytical-articles/item/12934-the-cost-of-black-tuesday-for-kazakhstan.html), 2014.3.19
8) Mukhitkyzy, Asemgul. “Нұр-Сұлтанда ондаған көп балалы ана баспана мәселесін шешуді талап етті.” https://www.azattyq.org/a/29883112.html, 2019.4.16
9) 그러나 이러한 공식적 법률과 정책이 실제 집행되는 과정에서 관료들의 부패가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카자흐스탄에서 부패는 교육, 의료와 같이 일상적인 분야에서부터 경제, 정치, 행정 등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부패인식지수 (corruption perception index)에 의하면 2022년 기준 카자흐스탄의 순위는 조사대상 180국가 중 101위이다 (부패 정도 심할 수록 순위가 낮아짐) (https://www.transparency.org/country/KAZ). 다자녀가구를 위한 임대주택의 경우, 현실적으로 공급량이 매우 부족하여 많은 신청자들은 수 년간 대기 상태로 지내야 하는데, 중간에 끼어들기 등으로 대기 순번이 조작되는 경우가 흔하다.
10) Eurasianet. “Kazakhstan: President tells government to step down.” https://eurasianet.org/kazakhstan-president-tells-government-to-step-down, 2019.2.21
11) 그러나 DVK의 활발한 온라인 활동을 완전히 막기는 어려운 일이다. 2018년 3월, Mukhtar Ablyazov는 봄맞이 축제기간인 나우르즈 연휴 동안에 푸른색 풍선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DVK에 대한 지지를 표현해달라고 호소했다. 푸른색은 카자흐스탄의 국기 색깔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다. 축제기간 길거리에서 푸른색 풍선들을 아이들로부터 강제로 뺏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경찰의 신경질적인 대응이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형성에 한 몫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https://thediplomat.com/2018/03/ablyazovs-balloons-kazakh-opposition-co-opts-the-color-blue/) 
12) Umarov, Temur. “What’s Behind Protests Against China in Kazakhstan.”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https://carnegiemoscow.org/commentary/80229, 2019.10.30
13) 2022년 9월, 정부는 다시 수도의 이름을 원래 이름은 아스타나로 되돌린다고 발표했다. 
14) 이들은 “전제 정치와 독재에 반대한다 (No Despotism & Dictatorship)”라고 쓰인 배너를 들고 “카작인들이여 일어나라!” “토카예프는 우리 대통령이 아니다” “다리가 [나자르바예프의 맏딸이자 당시 상원의장]는 우리의 상원의장이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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