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리투아니아 반유대주의 정당의 부상과 향후 전망
리투아니아 서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EU 연구소 발트연구센터 연구교수 2024/11/26
2024년 10월 27일 리투아니아 총선 결선 투표가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는 1991년 독립 이래 역대 최고의 참여율을 기록했으며, 여러 가지 예측 못 한 사건으로 인해 국민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뜻밖의 반전과 역전극이 펼쳐진 한 편의 드라마로 평가되기도 한다. 리투아니아의 총선은 각 선거구에 등록된 유권자의 총합을 기준으로 최소 20% 이상의 득표수를 얻은 최고 득표자가 당선자로 인정되는 방식이다. 만약 이 기준에 충족하는 후보가 없는 경우, 2주 후 결선 투표에서 최종 당선자가 가려지는 구조다.
결선 투표에서 사회민주당(LSDP: Social Democratic Party of Lithuania )은 의회 전체 의석 141석 중 52석을 차지하면서 제1당에 등극했다. 기존 여당인 보수정당 ‘조국연합-기독민주당(TS-LKD: Homeland Union)’은 28석, ‘네무나스의 새벽(PPNA: Dawn of Nemunas)’은 20석, 민주 연합 ‘리투아니아를 위하여(DSVL: Union of Democrats ‘For Lithuania’)’는 14석, 자유연맹(LS: Liberals’ Movement)은 12석, 농민녹색연합(LVŽS: Lithuanian Farmers and Greens Union)은 8석을 확보했다. 폴란드인으로 구성된 정당인 선거행동당(LLRA-KŠS: Electoral Action of Poles in Lithuania-Christian Families Alliance)도 3석을 차지했다.
신소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2024년 리투아니아 총선거
리투아니아에서는 최근 30년 동안 좌파, 우파가 번갈아 가며 여당 지위를 차지하였기에 사회민주당이 압승한 데 반해 보수정당이 패배한 이번 선거 결과가 크게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이변은 반유대주의, 친러성향으로 분류되는 신생 정당 ‘네무나스의 새벽’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사실 10월 13일 치러진 리투아니아 총선거 1차 투표에서도 이러한 신소정당들의 약진세가 뚜렷했다. 1차 투표 결과 전체 1,731개 선거구에서 사회민주당이 20.95%의 표를 얻어 역시 압승을 거두었고, 그 뒤를 이어 현 여당인 조국연합-기독민주당이 15.79%, ‘네무나스의 새벽’이 14.99%, 민주연합 ‘리투아니아를 위하여’가 9.37%, 농민녹색연합이 7.46%, 자유연합이 7.13%의 표를 얻었다.
여론조사 결과 ‘사회민주당 우세’ 적중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가 상당히 유사했다는 것이다. 실례로 선거 전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현재 여당인 ‘조국연합-기독민주당’이 2020년 선거에 비해 낮은 12~15%의 표를 얻어 여당 자리를 사회민주당에 넘겨주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네무나스의 새벽’의 득표 순위 3위도 여론조사 결과와 일치한다.
또한 이번 선거는 국민의 참여율이 굉장히 높았다. 1차 선거에는 유권자의 52.06%가 참여하며 직전 선거인 2020년의 47.16%를 크게 웃돌았다. 2차 선거의 투표율은 1992년 이후 가장 높은 41.32%를 기록하며 국민의 정치적 관심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1차 투표에서는 총 78명의 의원이 선출되었고, 2주 후에 열린 결선 투표에서 63명이 추가로 선출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레미기유스 제마이타이티스(Remigijus Žemaitaitis)가 이끄는 신당 ‘네무나스의 새벽’이 전체 정당 중 3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2024년 봄에 결성된 신당으로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반유대주의 정치인의 부상
세이마스(SEIMAS, 리투아니아 의회) 의원직을 세 차례나 역임하였으며 지난 대통령 선거에도 후보로 출마한 바 있는 ‘네무나스의 새벽’ 당 대표 레미기유스 제마이타이티스는 반유대주의 논란으로 오랜 기간 구설수에 올라 있었다. 1982년생의 젊은 정치인인 제마이타이티스 대표는 이미 여러 차례 극단적 언행으로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고, 리투아니아의 유대인을 폄하하는 언행으로 꾸준히 입방아에 올랐다. 올해에는 “국제사회에서 용인되는 관용의 선조차도 넘었다”는 맹공격을 받았다.
2023년 5월 제마이타이티스 대표는 페이스북에 “유대인과 러시아인이 1944년 6월 3일 리투아니아 피르츄피에이(Pirčiupiai)에서 자행된 민간인 대학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그해 6월, 잉그리다 시모나이테(Ingrida Šimonytė) 총리의 이스라엘 방문 당시 “리투아니아인은 유대인과 러시아인이 리투아니아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서 저질렀던 일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극단적인 내용을 연속으로 게시해 다시 물의를 일으켰다.
정치적 포퓰리즘을 위한 역사왜곡?
제마이타이티스 대표가 2023년 5월 거론한 1944년 피르츄피에이 대학살은 백 명이 넘는 리투아니아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유대인들이 벌인 사건이 아니라, 나치 독일군의 소행이었다. 당시 리투아니아에 주둔하고 있던 나치 독일군이 인근 숲에 은신해 있던 소련 파르티잔(партиза́н, partisan)으로부터 공격을 받자 중대 병력을 보내 마을에 사는 리투아니아 민간인들을 전부 산 채로 불태워버린 것이었다. 참사의 결과로 119명이 사망했다.
2024년 9월 3일 빌뉴스에서는 제마이타이티스 대표의 특정 민족 대상 혐오 표현과 독일 전쟁범죄 축소 발언에 관한 혐의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정부 차원에서의 제마이타이티스 대표를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지지하는 유스타스 라우츄스(Justas Laucius) 검사는 “제마이타이티스는 자신의 SNS에 피르츄피에이에서 일어났던 대학살의 진실을 왜곡하고 유대 민족을 폄하하는 내용을 게시하였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마이타이티스 대표는 재판에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가 자신의 미개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발언 하기도 했다. 또한, 네타냐후 총리를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에 비유하는 등 다소 과격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리투아니아 헌법재판소는 제마이타이티스 대표의 반유대주의적 발언이 의원 맹세와 헌법을 심각하게 위반하였다는 판결을 내렸다.
관용의 선을 넘어버린 반유대주의 언사
이 사건은 리투아니아 정치권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가브렐류스 란스베르기스(Gabrielius Landsbergis) 리투아니아 외교부장관은 “이스라엘이 제마이타이티스의 반유대주의적 언사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게다가 그는 “제마이타이티스가 이미 관용의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고 강조했으며, “제마이타이티스와 같은 정치인이 정부의 구성원이 된다면 리투아니아는 앞으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치러야 할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Gitanas Nausėd) 리투아니아 대통령 역시 “제마이타이티스의 정당이 리투아니아 정치에서 중요 정치 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고려할 때, 그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발언은 중요한 행위이다”라고 강조했다. 문제적 발언으로 인해 리투아니아의 전략적 동반자인 독일과의 관계에도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반유대주의 정치인이 새로운 정치의 희망?
현 보수 여당인 ‘조국연합-기독민주당’은 궁여지책으로 이 극단적인 세력의 팽창에 대비하여 이전까지 제2의 정당이었으나 이번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사회민주당에 연합 형성을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민주당의 대표 빌리야 블린케비츄테(Vilija Blinkevičiūtė)는 예상 밖으로 “‘네무나스의 새벽’과 연립여당을 구성할 가능성을 배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사회민주당의 이러한 반응은 여당만이 아닌 정치계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 내 유대인 위원회에서도 리투아니아 사회민주당이 제마이타이티스와 연합을 결성할 의향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극단적인 정당과의 교류는 어떤 방식으로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SNS에 게시하며 우려의 뜻을 밝혔다.
제마이타이티스는 과거에도 이러한 문제적 언사로 인해 이전에 소속하였던 자유정의당에서 제명되었으나, 2023년 11월 ‘네무나스의 새벽’을 창당하고 현직 의원 두 명도 영입했다. 정치인들과 언론의 우려 섞인 분석과는 달리 리투아니아 현지 언론은 ‘네무나스의 새벽’이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변화시킬 정도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총선에서 ‘네무나스의 새벽’이 득표율 3위를 차지하였고, 제마이타이티스 대표는 나우세다 대통령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신뢰가 가는 정치인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은 리투아니아 내에서 제마이타이티스 대표가 갖는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소시지 정당’으로 놀림 받던 정당의 성공
이번 선거는 리투아니아에서 극단적인 포퓰리즘 및 선동정치의 담론을 내세운 정치인과 정치집단에 대한 지지율이 점차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네무나스의 새벽’이 정치 활동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 정당의 포부를 농담처럼 취급하여 ‘네무나스의 소시지’(리투아니아어로 소시지dešra와 새벽Aušra이 앞의 두 철자만 다르다는 이유로 붙인 별명)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반유대주의 정당의 약진이 리투아니아 국민의 뜻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라는 판단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리투아니아는 21세기 초반부터 선거 때마다 성급하게 조직된 정당과 정치집단이 부패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자본주의적 엘리트들을 타파한다는 공약을 내세워 많은 표를 얻는 경향이 있었다.
2004년 탄핵당한 롤란다스 팍사스(Rolandas Paksas) 전 대통령, 정경유착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빅토라스 우스파스키하스(Viktoras Uspaskichas) 등이 이런 방식으로 정계에 진출했으나 이들의 정치 생명은 오래 가지 못했다. 리투아니아 국민이 제마이타이티스 대표에게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그의 정치적 위치나 제시하는 프로그램 때문만이 아니다. 제마이타이티스 대표가 의회 내에 자리를 꿰차고 앉은 부적절한 인물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한’ 최고의 방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소시지 정당을 선택한 기존 정치세력
사회민주당은 연정에 참여할 정당이 11월 둘째 주 정도에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밝혔고, 마침내 11월 9일 많은 이들의 예상과 우려대로 사회민주당은 ‘리투아니아를 위하여’ 그리고 ‘네무나스의 새벽’과 연정 구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에 11월 10일 이스라엘 의회도 입장을 밝혔다. 크네세트(Knesset, 이스라엘 의회)의 보안, 안보, 외교위원회 회장 율리 에델슈타인(Yuli Edelstein)은 현재 리투아니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안에 대하여 강한 우려를 표했다. 에델슈타인 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리투아니아는 이스라엘과 가까운 동맹국이며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의 수호자이다. 전 유럽에 반유대주의와 반이스라엘 분위기가 퍼져가는 지금, 현재 리투아니아에서 반유대주의와 관계가 있는 정당의 인기와 영향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데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독일 외무연구위원회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사회민주당의 행동은 독일군의 리투아니아 주둔의 필요성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한번 고려하게 만들며, 독일군의 리투아니아 주둔에 대해서 리투아니아의 많은 정치인들이 찬성했으나 제마이타이티스가 정부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은 정치엘리트 차원에서 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독일 분데스탁(Bundestag, 연방의회) 외무위원회장 미하엘 로트(Michael Roth)는 “반유대주의적 정당과의 연합정부 구성은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로스 위원장은 “리투아니아 사회민주당이 유럽연합 내 사회민주정당연합 내에 존속하려 한다면 이 반유대주의적 정당과 연정을 이루는 일은 심각하게 고려해야한다”고 발언했다.
리투아니아 신정부, 대중국 외교 정책 전망
이번 총선을 맞아 국내외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끈 것은 2021년 이후로 악화 일로에 있는 중국과의 관계 회복 문제이다. 신정부를 구성하게 된 세 정당은 이 사안에 대해서 사뭇 상반된 의견을 보이고 있어 아직 결과를 예측하기엔 이르다.
먼저 ‘네무나스의 새벽’은 대중국 관계를 원상 복귀해야 한다는 포부를 보여왔다. 제마이타이티스가 올해 5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던 당시 중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무엇보다 주 리투아니아 대만대표부에 ‘대만’이라는 국명을 사용하게 놔둔 것이니만큼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대만대표부의 이름을 수정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반면 사회민주당과 ‘리투아니아를 위하여’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인정하나 반도체 등 첨단기술 개발이나 거시적 경제성장을 위해서 대만과의 관계 유지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므로 당분간 대중국관계에 있어 큰 틀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진단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시아와의 전반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이전 정부로부터 유럽연합(EU)에 집중되어 있던 기존 외교의 핵심이 동북아시아로 확대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므로 신정부에서는 이 추세에 발 맞추어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들과의 지속적인 관계가 강하게 형성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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